말이 없는 가르침

진심의 힘

by 윤슬

"엄마 배고파. 계란말이랑 메추리알 해주세요."


우리 집 아이들의 최애 반찬은 계란말이와 메추리알이다. 오늘 저녁도 어김없이 귀염둥이 둘째가 노랠 부르듯 내게 메뉴를 주문했다.


단골 꼬마 손님의 주문을 받은 난 오목한 그릇을 꺼내 놓고 계란 다섯 개를 깨뜨려 넣는다. 그리곤 깨끗이 씻어 준비한 양파, 당근, 애호박, 파 등의 야채들을 아주 잘게 다져 대충 휘저어 놓은 계란 위로 투하한다. 마지막으로 맛소금을 몇 꼬집을 넣고 간간하게 간을 한다.





어느새 내 정신은 노트북 스피커에서 잔잔히 흘러나오는 노래에 흠뻑 취해 달을 걷고, 제혼자 알아서 갖은 야채들을 다지고 있는 내 손. 그런 내 손이 기계처럼 다져내는 야채들을 보고 있으니 문득 신혼초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결혼 전 학창 시절부터 오랜 시간 자취 생활을 해왔고 먹는 것엔 영 흥미도 관심도 없었던 터라 결혼을 결심하고 내가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이 바로 음식이었다. 주부로선 평생 피할 수 없는,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과제 중 하나로 생각하였기에 그 당시 더욱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곤 결혼 후, 예상한 대로 역시나 음식을 하는 행위 자체가 내 취향엔 그리 맞지 않았다. 음식도 다양하게 많이 접해 보고 먹는 것 자체를 즐겨야 맛도 잘 낼 수 있는 것이기에 나로선 힘든 과제였었던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한없이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음식이 결혼 7년 차인 요즘엔 주문을 하면 척척 해내는 메뉴들도 생겨났단 사실이 순간 참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신혼초 아이가 없었을 때부터, 어느새 아이가 둘인 지금까지 3주에 한 번, 좀 늦으면 한 달에 한 번은 시댁에서 2박 정도를 보내고 오곤 한다. 그때마다 내 어머니는 일요일이 돼서야 도착할 우리가 못 본 장을 대비하여, 시댁 장을 보실 때 두 집 장을 미리 봐놓으셨다. 그래서 시댁에서 며칠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엔 늘 음식 박스 하나가 가득 채워져 차에 실렸다.


그렇게 어머니께서 매번 챙겨주신 식재료 덕분에 주신 재료 안에서 할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 해 보고, 받아온 재료들을 버리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부터였다. 혼자 뭘 해 먹을지 고민할 때 막막하기만 했던 음식이 어머니의 조용한 배려와 보조로 조금씩 친숙하고 익숙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행동을 해도 꼭 말을 앞세워 티를 내거나 잔소릴 해서 본인이 베푼 것은 온데간데없이 좋은 소릴 못 듣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아주 오랜 후에 닿더라도, 아니 혹여 영영 닿지 않더라도, 조용한 배려로 진심이 스스로 닿아 오는 어떤 울림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주시는 현명한 분이시다.






최근 코로나 후유증으로 체력을 회복하지 못해 시댁엘 가지 못 한지도 어느새 두 달이 다 되어간다. 결혼 후 이렇게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적이 없었다. 내일은 오랜만에 시댁에 가기로 한 날이라 어머니께 미리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내일 점심 먹고 천천히 출발할게요. 그리고 신혼초에 기본 식재료들 매번 챙겨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제 음식을 좀 할 줄 알게 되니 어머니가 왜 매번 챙겨주셨는지 알 것 같아요."


"나는 말 안 해도 그걸 알아주는 네가 더 고맙다. 다들 보고 싶네. 내일 출발할 때 전화 줘."



어쩌면 단 몇 시간을 머무르기도 불편할 수 있다는 시댁이 내겐 강제 종료를 하고 마음 편히 쉬다 올 수 있는 힐링의 장소라는 사실에 나는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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