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어줄 수 있는 '품'

by 윤슬


저는 일회성으로 5분 안에 1만 원을 얻기 위해 일 년여 전 처음 얼룩소란 곳에 글을 썼습니다. 글이 무언지도 모르던 제게 글이란 몇 번 푸면 금방 바닥을 드러낼, 말라기는 얕은 우물처럼 한계가 분명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스로의 아픔을 적은 첫 글을 시작으로 봇물 터지듯 내 안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을 거의 매일 쓰고 소통했을 때일까요.. 얼룩소 시작 당시, 조금 심각한 우울증상 때문에 매일 먹던 정신과 약을 며칠에 한 번씩 먹는 식으로 약 복용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얼룩소 플랫폼에 꼭 맞는 글은 아니지만, 스스로만의 방식으로 얼룩소에서 일 년 가까이 써 온 지금, 저는 산후우울증, 공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의 후유증들로부터 많이 벗어났다며 기쁘게 말을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젠 아주 가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병적 호흡곤란을 느낄 때에만 한알 정도의 약을 먹는 수준으로 상태가 호전되었으니 웃으며 회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치유의 과정들을 그곳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제겐 그 공간이 더 특별하며 소중한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아픔을 글에 묻혀 흘려보낼 수 있도록 넓은 품을 내어준 얼룩소란 광장과, 서로의 글로 오가며 소통한, 저를 쓰고 또 쓸 수 있도록 응원과 격려로 원동력을 주시는 분들이 제겐 정말 소중합니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게도 반드시 일어난다고 했던가. 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된다.

자기 슬픔을 내보이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해관계로 얽힌 경쟁 사회에서 슬픔 말하기는 금기다. 슬픔이 노폐물처럼 쌓여 갈 때 인간의 슬픔을 말하는 책은 좋은 자극제다. 슬픔을 '말하는 법'을 배우고 슬픔을 '말해도 좋다'는 용기를 준다.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일을 꺼내 슬픈 글로 쓰면 슬픈 채로 산다.
살아갈 수 있다. 왜 슬픈 책을 읽느냐는 항의는, 나는 슬프다는 인정이고 슬픈 사람은 할 말이 많게 마련이며, 거기서부터 글쓰기는 시작된다.


- P107 (벌거벗은 자신을 쓰라. 추방된 상태의, 피투성이인. - 데니스 존슨 P.106 옆 글)
<쓰기의 말들> 발췌문




제 글을 매번 읽어주는 절친이 있습니다. 친구가 내 글에서 제 고민을 읽은 것인지.. 어찌 알고 이런 좋은 문장들을 발췌해두었다가 때마침 오늘 선물을 해주네요. 어제오늘 조금 힘들었는데 이 글이 정말 큰 힘이 되어줬습니다. 좋은 글을 보고 제 생각을 해주는 좋은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한 오늘 입니다.


친구가 준 이 글을 읽으며 자연스레 얼룩소란 공간이 떠올랐네요. 얼룩소를 믿고 애정 했기에 매번 제 속살을 드러낸 글을 쓰고 많은 분들께 보여줄 수 있는 용기도 얻은 것 같단 생각이 스쳤습니다.

언젠간 얼룩소가 내어준 품처럼 제 글도 누군가에게 넓은 품이 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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