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지만, 줄일 순 있는
잘 살아간다는 건..
내가 낳은 스승
오후 4시, 유치원 하원 차량에서 차례로 아이들이 내린다. 매번 반복되는 헤어짐과 만남에 무뎌질 법도 한데 이 순간 엄마와 아이들은 한결같이 반갑고 애틋한 얼굴을 장착하고 만나 서롤 얼싸안는다. 이 감정은 매일 느끼는 감정이지만 무뎌지지 않는 참으로 신기한 감정이다.
나는 긴 산고의 시간과 큰 수술로 오던 이름 모를 공포심을 이겨낸 끝에 드디어 아이와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숭고한 아픔을 겪어내고 서야만, 그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선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선물들 중 하나가 바로 부모가 되지 않으면 느껴보지 못할 이런 경이운 감정이 아닐까.
이 쪼꼬미들이 나름의 긴 시간 동안 엄마와 떨어져 오늘도 고된(?) 사회생활(?)을 스스로 잘 해내고 돌아온 것에 마냥 대견하고 반갑다. 그래서인지 이 시간 이곳의 풍경은 (좀 오버해서) 마치 이산가족 상봉을 연상케 한다. 매일매일 보고 늘 붙어 있고선 불과 몇 시간 전에 헤어진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의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진다.
5세와 7세 지금 한창 말을 안 듣고 까불 시기라고들 하지 않던가. 새것인 장기들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의 요즘은, 금방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세상에 둘도 없는 절친처럼 잘 놀고, 다퉜을 때 잠시 서로에게 접근금지 처분을 내리면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며 사랑하는 연인처럼 꼭 붙어 안고선 떨어지지 않으려는 귀여운 녀석들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요즘 잠자는 시간 빼곤 함께 있는 내내 온종일 뛰어다니며 깔깔거리거나, 투닥투닥 싸우다가 찡찡대고 울며 일러주거나, 말을 안 듣고 뛰다가 꼭 어디엘 쿡 박아 멍이 들어 내게 오길 반복한다. 그러면 어느새 애틋했던 하원 때의 감정은 잊은 채, 내 머리 위엔 뚜껑이라도 생긴 듯, 한 번씩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스팀 덕분에 뚜껑이 들썩인다. 그리곤 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든 아이들의 얼굴과 작은 몸을 한참 동안 내 눈에 넣어 쓰다듬는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어찌 내게 왔지라며 몇 시간 전 생겼던 머리 위 뚜껑은 온데간데없이 난 잠시 동안 천사를 낳은 엄마 천사가 된다. 이런.. 도대체 인격이 몇 개인지 엄마가 되고 가끔 스스로 놀라곤 한다..
스무 살 이후, 난 어른이 되어 간다고 생각했고 서른 즈음엔 어느 정도 감정 조절에 능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매일 참을성의 한계를 시험받으며 감정 조절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가는 느낌이다. 아이들 앞에선 난 그저 참으로 어리석고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함을 느낀다. 그럴 때면 이제야 정말 어른이 되어가는 거구나 하고 속으로 조용히 되뇐다.
내 속으로 낳은, 내 스승에게 이렇게 배우고 성장하며 난 좀 더 어른다운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라고 말이다.
우리 집 예쁜 꼬맹이들
피할 수 없지만, 줄일 순 있는
아이들과의 반가움을 짧지만 찐한 포옹으로 만끽하곤 저녁 장을 보러 마트에 가자는 말을 전했다. 그런 내 물음에 첫째는 벌써 조금 컸다고 자신 혼자 집에서 우릴 기다리겠다고 한다. 첫째(아들)를 집에 데려다 놓고 둘째(딸)와 손을 잡고 마트엘 갔다.
마트에 가는 길, 딸아이는 길 주변 나무에 열린 열매를 따보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도 주워 내게 보여주곤 기뻐한다. 그리곤 수확(?)한 열매들은 자신의 손만큼 작은 주머니에 보물이라도 되는 듯 조심히 넣어둔다. 그러는 동안 아파트 코앞 마트에 금방 도착했다. 이것저것 장을 보고 무거운 보따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선 집으로 걸어간다. 조금 걷다 손이 아파 오면 다른 손으로 짐을 옮겨 들길 반복했다.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내 앞에 꼬마 토끼처럼 콩콩 뛰어 걷던 아이가 한 노년의 여인 앞으로 뛰어갔다. 잠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 앞에 간 내 딸은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하곤 갑자기 할머니께 엉덩이를 보여주며, 고개를 돌려 바라보곤 엉덩이를 씰룩 쌜룩 흔들며 춤을 추는 게 아닌가. 갑작스러운 아이의 행동에 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금방 얼굴에 함박미소를 머금으시더니 큰 소리로 웃으시며 '정말 예쁘다'란 말으로 반응을 해주셨다. 돌아오는 칭찬에 신이 난 아이는 개다리 춤도 선보이며 마구 애교를 발사했다. 아이는 춤 잘 춘다, 예쁘단 말이 듣기 좋았는지 집으로 콩콩 뛰어가다가도 중간중간 멈춰 개다리춤을 추길 반복했다.
이럴 때 보면 엉뚱 발랄한 것이 내 아이가 분명하구나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향한 찐 웃음이 터지곤 한다. 나는 가끔 아이 아빠가 방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뜬금없이 딸아이를 대동해 엉덩이 춤을 보여주곤 했다.. 그 외의 괴상한 몸짓(?)과 여러 엉뚱 발랄(?)한 내 행동을 보고 배웠을 이 아가씨를 어쩌지...
춤을 추며 오느라 무거운 장보따리로 엄마의 손과 팔이 괴로운지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 덕분에 집으로 오는 길은 두 배로 멀게 느껴졌다. 동 입구 자동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가자, 미리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시는 중년의 한 아주머니가 계셨다. 나와 딸아이는 동시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고, 아주머니 또한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런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딸아이는 또 아주머니께 엉덩이 춤과 개다리 춤을 연달아 보여드리곤 윙크까지 하는 게 아닌가.. 우리 딸아이의 모습을 본 아주머니가 연신 '너무 예쁘다'라며 우리를 향해 웃어 보이신다.
" 난 우리 애들 이맘때쯤으로 딱 한 번만 돌아 가봤으면 진짜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그땐 육아 자체로 너무 힘들어서 내 애가 얼마나 예쁜지를 잘 몰랐어요. 내 애도 이렇게 예뻤을 건데...."
아주머니는 일전에 아파트 미화원 아주머니께서 들려주신 똑같은 말을 내게 들려주신다. 그래서일까. 다른 시기, 다른 장소, 다른 분과의 대화인데 세월의 필름이 빠르게 지나가듯 회상하는 눈동자의 흔들림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려주시는 얘기도 참 애틋했지만... 두 분의 눈동자가 입보다 더 진한 그리움과 애잔함을 내게 들려주는 듯했다.
집으로 올라와 장보따리를 정리하면서도 아주머니의 눈동자가 전하던 여운이 계속하여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지금도 난 내 아이들이 크는 게 참 아깝고 너무너무 예쁘지만.. 왜인지 난 또 이 순간들을 잊고 중년, 노년이 되어 이 분들과 같은 말을 어떤 젊은 새댁에게 해주고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문득 스쳤다.
어쩌면 잘 산다는 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건... 좀 더 작은, 사소한 기억들을 많이 남기고,
좀 더 작은 동. 식물들 또 어떤 작은 사물들, 그리고 좀 더 작은 감정들을 관찰하고 살피며
알 수 없는 삶의 이치를 조금은 더 빨리 깨닫고 미래에 올 후회들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일이 아닐까.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미래에 올 후회들,
나는 얼마나 조금 더 빨리 깨닫고
줄이며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