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난, 제사도 명절도 싫다.

by 윤슬
명절에 시댁을 안 갔다.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명절날 시댁과 친정엘 가지 못했다. 나와 아이들은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자체 격리 중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시댁에 안 가니 좋겠다는 말을 하지만, 나는 아이와 내가 아픈 것도 싫거니와 안 가고 마음 불편한 이 찝찝한 마음도 무척 싫다.




제사, 산 사람의 욕심


칠 남매 중 여섯째임에도 남매 중 가장 효심이 크고 마음이 약한 죄로, 서로 부모님을 등 떠밀 때 혼자서라도 자식의 도리를 다 하겠노란 말을 했던 내 아버지. 부모를 모시고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안의 대소사는 모두 다 그의 아내인 우리 엄마의 몫으로 돌아왔다.


생신, 명절, 제사 등등 돈 하나 보태지 않고 빈손으로 와, 다 차려 놓은 음식에 매번 입을 댔던 친척들. 보고 겪은 불쾌한 감정에 대해 어려서 말 한마디 못하고 쌓인 감정들은 결국 친척들은 남보다 못하다는 감정으로 영영 굳어져 버린 채 나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어느 집의 한 며느리가 됐다.


명절만 되면 몇 날 며칠 엄마 혼자 고생을 하시고 돌아오는 대가라곤 들어먹는 욕 밖에 없는 명절이 나는 너무 싫었다. 그럴 때마다 죽은 사람을 기리고 떠받들고자 왜 산 사람들이 이리 고통받아야 하는지.. 당신들 조상을 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우리 엄마가 이리 헌신하고 고생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자라오면서 고지식하고 마음만 여려 늘 손해만 보고 사시는 아버지가 답답하고 미운적이 많았다. 결국 부모님을 저버리지 못하고 모시는 효심도, 그 많은 집안의 대소사와 제사까지도 자신의 손으로 끝까지 모시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그 자식의 도리란 것도 모두 아버지의 욕심일 뿐이다. 그 욕심을 다 지키자면 그 뒤에 몇 사람들이 몸고생,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너도 나도, 내 자식에겐 물려주기 싫은 '제사'


어제 도착하여 친정에서 1박을 한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부차 전화를 해서 특이사항들을 들려주는데 이번 명절엔 차라리 안 갔던 게 나았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삼촌과 아버지께서 내 남동생에게 흩어져 있는 조상님들 묘를 한 군데 합장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물었다고 했다. 나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자라,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이미 어릴 때부터 친척, 그리고 조상일이라곤 안 좋은 기억만 쌓여있는 내 동생이 절대 반길리 없는 내용이었다.


동생 위로 40대 50대 사촌 오빠들이 몇 명이나 있는데, 다 뛰어넘고 겨우 30 중반인 내 남동생에게 상의를 한다는 건 내 아버지가 제사를 모셔왔기 때문에 아들인 네가 당연히 물려받고 관리도 할 거지?라는 무언의 책임감도 포함되어 있는 의논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의를 사촌 형들까지 다 모아 놓고 하지 않고, 형들 다 건너뛰고 제게 하시는 겁니까? 아버지 대에는 아버지가 하셨더라도 그건 오롯이 아버지 선택이시고, 저는 아버지가 하셨더라도 제사 물려받을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아버지 형제 분들끼리 상의해서 결정하세요.

삼촌은 그럼 제가 제사 안 모신다고 하면 삼촌 아들한테 제사 줄 겁니까?"




삼촌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동생은 이제까지 속으로만 쌓아둔 말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더욱 합리적인 변화가 필요해.


시댁의 맏며느리로 몇십 년째 제사와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있으신 우리 시어머니께선 3년 전 아주 큰 용기를 내셨다. 앞으로 추석 때만은 그 많은 친척들이 따로 한 집에 모이지 않고 벌초를 하러 산소에 들릴 때, 각 집 대표들만 모여 음식과 술은 간단히 사서 잔을 치는 것만으로 끝내자는 제안을 하셨고, 그 덕에 그 해부터 우리 시댁엔 추석만은 작은 가족 단위로, 각자의 집에 모여 평소처럼 간단한 음식을 해서 먹고 오히려 가까운 곳에 나들이를 가거나 좋은 곳을 함께 다니며 추억을 만들고 있다.


진짜 돌아가신 조상들은, 우리가 조금 열어 둔 문 틈 사이로 들어와 음식들을 먹고 가시는 걸까? 옛말에 돌아가신 조상들을 잘 모시면 집에 그리 복이 오고 대대손손 앞길도 잘 돌봐 주시어 집안이 화목하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평생 부모도, 제사도 모신 우리 친정집은 여태껏 암흑을 벗어난 날이 크게 없다. 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엄마는 오히려 고생만 하고 무시당한 그 세월에 한이 쌓여 마음에 병을 얻고 고통 속에 사신다. 결국 그 듣기 좋은 옛 말은, 산 사람들이 마음 편하고자 만든 미신일 뿐이다.


명절, 성묘, 제사, 음식 등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큰 틀은 변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옛 방식 그대로 지켜오는 고지식한 집안에 시집을 간 여성들은 이번 명절도 어김없이 큰 고통일 것이다. 이젠 집안의 큰 어른들이 더 합리적이고 깨어난 생각으로, 바꿀 건 바꾸고 정리할 건 정리해서 후손들에게 즐거운 명절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보고 싶은 친구, 보고 싶은 지인, 보고 싶은 가족.

진정 내가 소중히 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은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약속을 잡고, 그날 하루만은 기쁜 마음으로 만나 힐링하고 마음을 나눈다. 그런 시간들에 난, 다른 힘들고 고단한 여러 날들을 헤쳐나갈 힘을 얻어오곤 한다.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면 그게 돌아가신 분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보고 싶은 사람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진심을 갖고 만나 듯, 내 조상도 보고 싶은 사람이 그게 언제, 어느 때든 시간을 내서 진심으로 찾아뵙는 게, 죽음에 이르러 평안히 쉬고 싶으실 조상들을 위해서라도 더 올바른 섬김의 방법이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갑질'도 잘 견뎌야 '어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