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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 Nov 29. 2022

내 수술에 썸남이 왜?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벌써 16년 전의 일인가 보다.


어릴 때부터 아주 골골 거리는 체력이라 잔병치레를 많이 했던 나의 저질 체력은 늘 부모님의 걱정거리였으며 내게도 큰 걸림돌이었다.


저질 체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던 센터는 바로 편도 비대증이란 놈이었다. 편도가 보통 사람보다 비정상적으로 크기 때문에 편도가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툭하면 붓고 염증이 생겨 열을 동반하는 몸살에 시달려야 했으며, 감기만 걸려도 편도염으로 번져 사람을 아주 못 살게 구는 나쁜 놈이었다. 이 정도가 되니 성인이 되었을 때도 한 달에 한 번은 수액이나 영양제를 맞으며 관리를 해주어야 사회생활이 가능했다. 뭐 정말 지금 생각해도 어찌 그렇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골골, 골골거렸던 애처로운 과거인 것이다.











스물두 살 즈음, 지켜보다 못 한 엄마가 수술을 권했다. 이미 세 달 전쯤 남동생이 먼저 수술을 했었고 삶의 질이 너무나 좋아졌다는 후기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고 나 또한 그 사실에 좀 더 쉽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마음을 먹고 바로 수술을 예약했다. 뭐 수술할 병원이나 수술 담당의까지도 알아볼 필요가 없었으니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미 동생의 성공적인 수술 후기가 있으니 무슨 고민이 필요하랴. 그렇게 나는 동생이 수술을 했던 같은 병원, 같은 담당의께 수술을 예약했다.






수술 당일


전날부터 속을 비워서인지 안 그래도 초췌한 맨 얼굴에 깍 마른 얼굴이 더 홀쭉해져 스스로도 봐주기가 힘든 지경이었다. 평소 집 앞 마트만 가더라도 기초화장을 하고 다니던 나로선 수술이나 병원 입원이 그런 이유에서 더 불편하고 꺼려졌다. 그래도 뭐 어떠하리. 뉘신지도 모르시는 분들은 잠깐 스치고 지나면 끝인 것을, 아프지 않고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야 그까짓 부끄럼? 불편함쯤은 다 참아내겠다 싶었다.





드디어 수술 시간.


액세서리 등 착용하고 있던 속옷까지 모조리 벗고 수술복 하나만 걸친 채로 나는 수술대 위에 올려졌다. 그런데 어라라 편도 마취 수술인데 윗옷의 단추를 왜 하나씩 푸는 것일까? 그러더니 금세 수술복 상의가 양쪽으로 젖혀 저 내 상체는 털이 다 뽑힌 생닭마냥 휑하니 벗겨졌다. 그리곤 간호사들의 기계적인 빠른 손놀림으로 심박동기와 연결된 선들이 금세 내 몸에 치렁치렁 부착됐다. 아직 스물 초반의 나이인 수줍은(?) 아가씨에겐 생각지도 못 한, 마음의 준비도 없이 일어난 갑작스러운 이 사태가 정말 부끄럽고 수치스게 느껴지던 찰나였다.






썸남?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아니 왜 목 안 수술에 상체는 훌러덩 까고 지렁인 거야. 으아아앜. 부끄러워. 그런데... 저 얼굴은..  그러니까 저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나는 그대로 마취에 걸렸고 몇 초 만에 깊은 잠이 들었다. 그 흔한 '마취 들어갑니다.'라는 언지도 주지 않은 채 잠에 빨려들어갔기에 조금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깨어보니 대기실에서 마취가 풀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마취가 좀 깨자 아직도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입원실로 올려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 건 아까 그 수술실에서 마취 직전에 보았던 어떤 간호사의 얼굴이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니야. 절대 아니어야 돼애애애애~~  으앜~~  제발ㅜㅡㅠ"





그렇게 찝찝한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스스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던 찰나,




"안녕 오랜만이야."


"아 깜짝이야.. 오.. 오빠. 혹시 여기 간호사였어?"


"응. 몰랐어?"


"아.. 기억이 가물.. 그.. 그런데 혹시 아까 내 수술 때 나 보고 웃던 간호사가 오빠 맞아? 아니지?"


"응~ 맞아. 왜?"


".........."


"나 하나도 못 봤어. 걱정 마."


"아니!!!!!!!! 뭘 못 봤다는 거야~~  아앜~~!! 오빠 나중에 보자..  미안한데 나 좀 쉬어도 되지?"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수술하기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물 즈음이었다.


당시 내겐 썸을 타던 오빠가 하나 있었다. 나이는 스물 다섯 정도였고 어느 병원 남자간호사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우리는 만나는 동안 사귀진 않고 요즘 말로 썸을 타던 사이였는데, 나는 썸 감정 이상으론 더 이상 발전하지 않았다. 그러니 한쪽이 끝난 썸을 그 오빠 혼자 이어가다가 고백도 받았지만 결국 쌍방향이 아니었던 썸은 그렇게 어영부영 연락이 줄어들며 끝이 났다. 더군다나 당시 나는 다른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더욱이 더 마주칠 일도 없었던 터였다. 그리고 2년 후였다. 뜬금없이 그날 웃통을 다 까고 갑작스레 수술실에서 우리 둘은 회한 것이었다.


수술 뒤 내가 입원실에 있는 동안 그 오빠는 자신의 담당 환자도 아닌 나를 종종 찾아와 인사를 했고 퇴원 즈음 아이스크림도 사주었다. 당시 한창 민감할 나이였기에 매일 맨얼굴의 초췌한 얼굴에 편도선 수술 후 침도 넘기기 힘든 그 상황이 정말 끔찍이도 징그러웠던 것 같다.


그리고 퇴원 후로도 종종 연락이 왔는데 바뀐 내 번호는 환자 차트에서 아주 손쉽게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환자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알고 연락을 하다니. 아무튼 모든 게 겸연쩍고 찝찝했다. 그 추레한 모습을 다 보고도 황당하게 다시 한번 대시를 해왔지만 썸 감정마저 아주 오래전 사라진 뜬금없는 상황이라 정중히 거절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론 다신 연락이 오지 않았고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아.. 예전 남자 친구도 아니고, 당시 남자 친구도 아니고, 신랑도 아닌 그저 오래전 썸남에게 상의 탈의한 모습을 보여주고 입을 떡 벌리고 마구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줬을 수술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르는 듯 그 뻘쭘하고 브끄하고 수치스럽던 기분이 올라온다.












참 맞아 그런 일도 다 있었지. 흐흐

오늘 한 작가님의 비슷한(?) 실화를 읽고 푸웁 하고 재미있게 웃다가, 순간 저어기 아주 깊숙이 쩌어기 쩌기 묻어둔 볼 빨간 기억 하나가 달처럼 떠올랐다. 아. 남일이 아니구나 하고 자각하는 순간 웃음기가 쏵 사라졌다.



다 남의 사연일 때 참말로 재미지는 거시지.

자까님 자까님 웃어서 참말로 죄송합니다.

그래도... 작가님 글 재밌었어요. 푸흡. 푸흡.

덕분에 오래된 수줍은 추억 하나 떠올려 글이 되었네요.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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