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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 Feb 03. 2023

'미친년'이라 불러주는 너에게

우린 꽤 '다정한 년'이었구나



안녕?



내가 글을 쓴 다는 걸 알고, 한 땐 내 글을 읽어주던 너.

이런 제목으로 너에 대한 글을 쓴 걸 알면 바로 전화가 오겠지?



"니 진짜 미친년 아니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난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하겠지.


"응. 난, 도래미미미미미미미미미친년이야~! 내 글이 그렇게 좋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게 '미친년'이란 다정한 속삭임을 들었던 날,

문득 내겐 하나의 의문이 생겼지.

미친년이란 소릴 듣고도 난 왜 이리 너와 즐겁게 웃고 있는 것일까?








친구야.


너의 첫 기억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초등학교 시절의 꼬꼬마 모습이 떠올라. 내가 그랬듯, 처음 우린 서로에게 존재감이 없었을 거야. 너희는 모두 다니던 유치원에서 바로 옆 건물로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유치원 이라곤 없는, 산으로 꽁꽁 둘러 인 동네에서 살다가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니까, 우린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 거나 친해질 계기가 없었어. 그냥. 좀 통통한 애가 너란 아이였단 걸 기억해. 그게 다였던 거 같아.


그런 네가 내게 또렷하게 각인된 것은, 나의 왕따를 주동하던 '대장 아이의 오른팔'이었던 기억이었어. 나는 소위 불알친구?로 불릴 내 절친을 대신하고, 넌 너의 절친이었을지 모를 대장을 대신해 싸웠지.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둘 다 너무 무모하고 웃겼더라고.. 정작 장본인들은 가만히 있는데 우리가 나서서 둘이 싸웠으니, 얼마나 바보 같냔 말이야. 이걸 의리 있어서 그랬다고 곱게 포장해서 써도 될까? 아니지.. 우리 사이에 포장은 무슨... 사실 그 당시 우린 좀 '착한 등신' 같았어.


아무튼, 나는 절친을 대신해 대장에게 맞짱(?) 뜬 첫 인물로 오랜 왕따 생활에 들어가고... 내겐 친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 그 시절 너에 대한 기억도 뜨문뜨문 있을 뿐 별로 남아있지 않네.


그러다가 고등학교 진학 후, 우연히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지. 시험기간에 같이 공부하려 모여서, 공부는 커녕 실컷 놀다 찜닭이나 치킨을 시켜 먹고, 때론 함께 다른 지역 아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가 기차를 놓친 기억... 또 네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다 함께 울었던 기억, 전화로 걸려온 비에 함께 나가서 싸웠던 기억.. 참 유치하지만 소중하고 재밌게 남은 기억들이 많네.


그런데 그거 아니?

난 그러는 동안에도 너희들을 내 진정한 친구로 생각한 적이 없었어. 그냥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친한 사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 너도 잘 알겠지만.. 여러 아픔들에 찌든 난, 사람을 잘 믿고 사귀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어.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절친이 되었냐고?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 우린 모두 고3 이른 취업을 원했지... 아마 다들 넉넉하지 않은 환경 탓에 돈을 꿈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해. 모두들 뿔뿔이 흩어져 취업을 나갔던 그때... 얼마나 지났을까. 기억해? 네가 친구들한테 돌아가며 전화를 돌린 적이 있어. 울면서 말이야.


"나에겐 가족도 뭐도 없어. 너희가 내 가족이나 다름없어.... 엉엉~"


그땐 아마, 어린 나이에 취업을 나가 하나같이 성장통을 겪고 있었을 때였던 것 같아. 나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수화기 너머 너의 진심을 듣고 엉엉 울었어.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살던 네가 걱정 하나 없이 순수한 얼굴을 하고 참 천진난만해 보여 부러웠어. 어떻게 저런 환경에도 저렇게 해맑을 수 있을까.

어쩌면 양부모가 다 살아계신 나 보다 네가 나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






돌아보면 우린 진짜 정해진 인연이었던 것 같아.


성인이 된 후 내가 소개해준 남자와 너는 결혼을 했고, 네가 아이를 가졌을 때마다 난 너의 태몽을 꿔줬고, 내 꿈에 너를 키워주신 할머니께서 나와 성별도 알려 주셨었지. 그렇게 내가 알려준 성별 대로 딸, 아들 하나씩 낳고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주고 있는 네가 난 참 대견해.


결국 우린,

어쩌면 원수로 남았을지 모르지만, 원수로 시작해 서로에게 귀한 귀인이 된 것 같아.


난 너에게 잘해주지 못하는데... 가끔 책이며 작은 선물들을 보내오는 너. 이번엔 첫째의 입학 때문에 더 미리 학부모가 된 너에게 참 많은 조언과 도움을 얻었어. 너도 바쁜데, 부탁하지 않아도 우리 아이 책상을 골라주고, 입학 선물도 보내줬었지. 그게 다 너의 진심의 크기란 걸 알기에 가끔은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울컥 불거져 나오려고 해. 물론, 너 몰래 말이야.







너와 나의 대화 속엔 자주 그런 말이 등장하곤 했지, 우린 성격이 정말 드럽지만, 누가 먼저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두면 참 예의 있고 착한 년들이라고.


그래 맞아, 사실 우린 욕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즐기는 스타일도 아냐.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가볍게 보는 편이지.

그런데 말이야, 네 덕분에 한번 생각해 봤거든. 그럼에도, 누가 내게 미친년이라고 해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을까?


부모님? 남매? 직장동료? 지인? 조금 친한 친구?

상상해 보니 다 화나거나 조금 많이 이상했어.


그러니 나를 미친년이라고 불러도 좋은 건 너 하나더라.




아, 다른 사람이 지나가다 이 글을 보고

"오호라~ 네가 '미친년'이란 소릴 듣기 좋아한다고? 그럼 내가 해줄게!" 하고 욕하면 어떡하냐고? 아무튼 걱정도 팔자야. 그런 덜떨어진 사람은 없으니 걱정 마 친구야.


그리고 중요한 건, 내게 그런 '다정한 욕'을 하는, '용감한 년'은 너 하나뿐이야. 푸하하하하하하

그러니 친구야, 오래도록 게, 다정한 욕쟁이로 남아줘~

이렇게 긴 말로 빙빙 돌렸지만 내 맘 알지? 늘 고맙다.




아아앜~ 손, 발가락이 사라질지 모르니, 이 글은 제발 네가 못 보길 바라며......

너의 친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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