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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 Feb 07. 2023

'나'라서, '내 것'이라서 행복한 마음, 그거면 돼

만족하는 마음


누굴 위한 '상'일까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한다.


"엄마 다른 아이들은 상장을 받았는데, 나는 받지 못했어."

"상장? 무슨 상장을 우리 엽이만 안 줬을까?"

"나만 안 받은 건 아닌데, 받은 아이들이 훨씬 많았어."


무슨 상장이길래 우리 아이는 못 받은 것일까 의아했다. 이유를 듣기도 전, 내 마음은 벌써 아이의 표정을 따라 시무룩 해저 버렸다.


"엽아 무슨 상장이었는데?

"한자 시험 잘 봤다고 주는 상장."


그제야 나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엽아. 잘 들어봐. 선생님께서 전화로, 엽이 한자 급수 시험 칠 것이냐고 물어보셨어. 여쭤보니까, 시험을 보면 대충이 아니라, 엄청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엽이는 시험 안 쳤으면 좋겠다고 엄마가 대답했어. 왜냐하면, 상장받아 오는 것보다, 엽이가 스트레스받지 않고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엄마 얘길 들어도 속상해?"

"아니. 엄마가 나 안 힘들라고 그렇게 했다면서, 그런데 왜 속상해. 히히히"


아이는 그제야 방긋 웃는다. 이 표정, 아이가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의 만족하는 표정이다. 아이의 그 미소를 보고야 내 마음도 평안을 되찾고, 덩달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우린 마주 보고 웃으며, '사랑해'라며 서롤 안아 줬다.





이른 경쟁에 노출된 아이들




점점 더 이른 경쟁에 노출되는 아이들





"어머니~ 엽이 한자 급수 험 치실 건가요?"

"음......... 선생님 경험 삼아 쳐 보는 것도 좋을까요? 혹시 급수 시험도 자격증 시험이라서 아이가 스트레스 많이 받을 까요? 그냥 평소 실력으로 가볍게 보면 되죠?"

"아니요~ 어머니, 하면 또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하하하"

"아..., 그렇군요. 그럼 우리 엽이는 안 치는 걸로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의사일 것 같지만, 유치원에 있을 아이에게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의사를 묻는다손 치더라도 시험을 치를 경우,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르는 과정과, 왜 한자 급수란 걸 벌써 따 두면 좋은지는 알지 못 한 채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사실, 벌써 아이가 자격증 시험을 치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현실이 나는 쉽게 이해가지 않았다.


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을 그날 알린다는 게, 바쁜 일들에 정신이 팔려 무심히 시간이 흘렀고,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친구들이 상장을 받고 있는 장면을 맞닥뜨린 것이다. 뭐든 남보다 잘하고 싶고, 질투도 승부욕도 조금 남다른 첫째 아이는 그것이 부럽거나 속이 상했을 것이다.






사실 내가 한자 급수를 치지 않게 하려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승부욕이 큰 만큼, 실수나 실패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아이의 마음의 힘을 길러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론 앞으로 수없이 겪을 경쟁 중, 굳이 꼭 필요한 과정이 아닌 것은 아이에게서 재외해 주고 싶어서기도 했다.


첫째 아이들 또래는 지금 한창 질투도 많고 친구들보다 더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어 할 때이긴 하다. 이 부분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당연한 욕구이긴 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니 지금 즈음이 딱, 바라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실수나 실패를 맛볼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학습하고 깨우치는 단계 같이 느껴졌다. 물론, 아이들 마다 조금 더 빠르거나 늦을 수도 있겠다.


이년 전만 해도 첫째는, 누군가 칭찬받으면 같이 칭찬을 해달라고 졸랐고, 게임을 해도 자신이 지면 속상해서 토라지거나 울기까지 했었다. 누군가가 잘 못 한 걸 바르게 알려줘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무룩해져서 이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기분이 나아지곤 했다. 그런 첫째를 위해, 엄마인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을지, 몇 년 동안 고민하고 조금씩 노력했던 것 같다.


시댁에 갈 때면 아이의 할머니, 고모할머니, 엄마, 동생까지 첫째와 자주 윷놀이를 하며 게임을 즐기도록 분위기를 만들었고, 뭐든 과정은 즐기는 것이며, 이기거나 지더라도 그저 함께 해서 즐거운 것임을 반복해서 알려주려 노력했다.


"엄마가 졌지만 우리가 다 함께하니 즐거웠어. 그렇지 엽아? "

"엽이가 아깝게 졌지만, 그래도 진짜 잘했어 그치? 엽이랑 함께해서 더 즐거웠어."


이렇게 집에서도, 자주 가는 시댁에서도 시간이 나면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했다. 처음엔 큰 변화가 없었지만 이 년이 지난 지금, 가만히 그때를 돌아보면 아이는 많은 성장을 했다.





스스로 서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



스스로 서는, 마음의 힘을 길러 주고 싶다




(2022년) 7세 1학기 초,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내용

"엽이는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밥도 골고루 잘 먹고 다 좋아요. 하지만 지금 한글 읽기나 쓰기에서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금 부족해요. 요즘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한글을 다 떼고, 이미 책을 읽는 수준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7세 2학기엔 받아쓰기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지금부터 아이가 조금씩 해 둬야 초등학교에 쉽게 적응할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잘못된 점을 알려줄 때 받아들이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립니다. 엽이가 이 부분이 힘들면 커서도 많이 힘이 들 것 같아서요, 이 점만 보완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어머니."



5세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께서 작년 초, 아이 7세에 다시 담임이 되어 참 감사했다. 내가 엄마로서 느끼는 아이의 세세한 변화와 장. 단점을 그때그때 캐치해 주시고, 가정과 연계하여 한뜻으로 아이에게 교육할 수 있었다.


육아를 하며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주변의 말에 현혹되거나 끌려가지 않는 것이었다. 주변의 다른 엄마들은 이미 3세, 늦어도 4세 정도부터는 스마트 학습을 시키거나, 학원을 몇 개씩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 때까지는 큰 걱정과 스트레스 없이 마음껏 뛰어놀 나이라고 생각했기에, 요즘의 흔한(?) 육아 방식과는 맞지 않았다. 그러니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때, 아이가 글 읽기, 쓰기가 조금 부족하다는 평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뭐든 천천히 시작하고 배우며, 유치원 까지는 마냥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이미 다른 친구들은 다 알고 오는 것을, 혼자만 몰라 뒤처지면서 받을 스트레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7세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걸 알기에, 주변에서 일찍 시작하는 교육에 최대한 흔들리지 않고, 6세까지는 마음껏 놀게 했고, 최근 7세가 되어서야 한글과 영어를 조금씩 익히게 했다. 그래서 7세가 된 아이는 집에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영어와 초등 누리과정 대비 학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내 눈엔 굳이 한자 급수 시험이 아니라도, 이미 아이가 하는 학습은 연령에 비해 넘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학습을 마친 아이들에게 가끔 묻곤 한다.


"너희가 왜 이런 걸 배워두는지 알아?"

"몰라, 왜 공부해야 하는데?"

"스스로를 위해서야.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하거나, 친구를 이기려고 하거나, 100점을 맞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야. 너에겐 네가 제일 소중해. 그래서 너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공부하는 거야.

"공부를 하는 게 나를 기쁘게 하는 거야?"

"엽아, 모르던 걸 알게 될 때 기분이 어때?"

"음...., 신기하고 재밌어!"

"그래, 너에게 많을 걸 알려주고 그것으로 재미있는 것, 그게 다른 사람을 위하는 건 아니야."

"아~"

"엽이, 그림을 그려서 파는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지? 네가 미리 여러 가지 다양하게 알아 놓지 않으면, 그림을 몇 개나 그릴 수 있을까? 아는 것이 다양해야 그림 그릴 것도 많겠지? 앞으로 꿈도 계속 변할 수 있어, 여러 개의 꿈도 꿀 수 있겠지? 그럼 스스로에게 많이 알려줄수록, 엽이가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좀 더 수월하게 이룰 수 있겠지? 그러니 지금 하는 것들은 엽이 스스로를 위해 하는 거야. 알겠지?"

"네~~^^"


아이들은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아마 내 말의 의미를 다 이해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대충 어림짐작으로 말 뜻을 알아듣는 눈치였다. 벌써 이런 말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정도로 성장한 아이를 보니, 괜히 혼자 울컥했다.


아이를 믿고 아이와 조금씩 노력한 결과인지, 7세 학기 초에 글쓰기와 읽기가 부족했던 아이는, 학기 말이 되자 여전히 조금은 더듬지만 책도 꽤 잘 읽고,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받아쓰기에서도 점수를 잘 맞아왔다. 받아쓰기는 10급까지의 급수가 있는데, 아이는 대부분 하나를 틀리거나 100점을 맞아 왔다. 얼마 전 '어린왕자 책'의 내용으로 유치원에서 골든벨이 열렸을 때도, 주관식 2개까지 다 맞아 온 것이 아닌가. 정말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점수를 잘 맞아 올 때면 일부러 더 쿨한 척 말한다.


"너무 잘했네 우리 아들 칭찬해, 그런데 뭘 이렇게 까지나 잘 맞아 왔어? 이렇게 다 맞출 필욘 없는데. 푸하하하하하하."

"엄마, 다 알아서 맞추는데, 그럼 일부러 틀려 올 순 없잖아~~!!"


또, 아이가 한 개 틀리고 속상해할 땐,


"엽아 백점 맞아오는 건 중요하지 않아. 백점 안 맞아도 돼. 한 개, 두 개, 세 개 틀려도 잘한 거야. 다 맞고 싶은 마음이나, 누군가를 이기고 싶은 마음, 누구 보다 못하다는 마음, '다른 사람 것'이 '내 것' 보다 더 좋아 보이는 마음은 모두 다 엽이 마음을 괴롭히는, 힘든 마음이야. 그러니까 열심히만 했다면, '나'라서, '내 것'이라서 좋은 마음, 만족하는 마음, 부족해도 괜찮다는 마음, 나를 사랑하는 마음 같은 행복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 앞으로도 엽이는 백점을 맞고, 친구들을 이기는 날보다, 그러지 못 한 날들이 더 많을 지도 몰라. 그럴 때마다 마음이 속상할 건데.. 그것보다, 엽이가 스스로 낸 결과에 만족하는 행복한 마음을 늘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

"응~ 엄마. 백점 안 맞아와도 엄마는 진짜 좋다는 거지? 히히히."








세상엔 육아서도, 내게 조언이라고 하며 들려주는 육아인들의 경험담도 넘쳐난다. 그러나 나는 그중 어느 것 하나, 또는 어느 한 사람의 말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경험도 그저 경험일 뿐, 아이마다 생각과 성향, 자라는 환경이 다 다른데 정답은 하나라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멀리 안 가고, 우리 집 아이들만 봐도 그랬다. 같은 부모아래,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성향이 정 반대다. 그래서 첫째 아이를 키웠던 생각을 하고, 둘째를 대하면 전혀 맞지 않았다. 경험상 육아서를 보고 나이에 맞게 따를 게 아니라, 육아서는 조금 참고하고 아이마다 그때그때 상황과 감정에 맞게 대해줘야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만 해도 경우에 따라, 때에 따라 계속하여 바꾸고 여전히 경험하는 중이니, 육아 방법이랄 것도 딱히 없는 것 같다. 그저 이번생에 엄마가 처음인 나와, 자식이 처음일 아이, 그렇게 둘이서 다투듯 아웅다웅하며 울기도 하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며, 다툰 후 화해 하듯 서롤 다독이고 받아주며 맞춰가는 것이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책이나 티브이에서 나오는 것처럼 소리 한 번 안 지르고, 엉덩이 한 번 안 때리고 키우지 못했다. 오히려 정말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방법이 무조건 정답인 것인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한다. 






(2023년) 1월 7세 2학기, 담임선생님과의 상담

어머니~ 엽이가 엄청 자랐죠. 몸만 자란 게 아니라 마음도 많이 자랐어요. 학기 초에 글쓰기도 책 읽기도 부족했는데, 이젠 너무 잘해요. 무엇보다. 실수를 알려줬을 때, 혼자의 시간을 갖지 않아도 바로바로 잘 받아들이고, 전반적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에이~ 뭐 그럴 수도 있죠. 괜찮아요."라는 말을 자주 하더라고요. 어머니도 이렇게 변화하는 동안 고생 많으셨을 것 같아요. 엽이는 이제 초등학교 갈 준비는 다 마친 것 같아요. 이 정도면 뭐든 잘 따라갈 것 같습니다. 단, 아시겠지만 가끔 꾀를 부려요. 그런데 그것은 이맘때 아이들이 대부분 성장하며 보이는 것이니, 이 부분만 좀 챙겨주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더 놀라운 변화였다. 집에서의 모습이 아이의 모든 모습이 아니란 걸 잘 안다. 유치원에서의 모습, 또 다른 장소에서 모습이 다른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 또한 장소와 때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그럼에도 아이가 유치원에서 또한 집에서 느끼는 바와 같이 많은 부분 성장했다는 말에 만감이 교차했다.





다 같이 행복한, 가정을 꿈꾼다




'나'라서, '내 것'이라서 행복한 마음, 그거면 충분해




앞으로도 나는 아이와 더 많이 투닥거리고, 울고 사과하고 서로를 다독이며 성장할 것이다. 그 시간들엔 모든 게 처음인 아이와 내가 실패도 좌절도 맛보고 종종 흔들릴 것이다. 또한 공부라면, 나 또한 고졸에 그친 엄마로서 많은 도움이 되어주진 못 할 것이다.


내가 성장하며 알지 못해 방황했던 것

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
'꿈'은 무엇인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돈'은 '꿈'이 될 수 있는가.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이것 하나.

내가 알지 못해 방황했던 것을 최대한 깨우치게 해 주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해, 아이가 '나'이기 때문에, '내 것'이기 때문에 '만족하는 마음'을 갖고, 자연스레 무엇인가 이루고 싶은 '꿈'을 품고 살 수 있도록, 그 꿈이 무엇이든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주려 노력할 것이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올해 여섯 살이 되는 둘째, 부모가 처음이라 뭐든 서툰 우리 부부는 얼마나 더 많이 흔들리고 단단해지며 성장하게 될까.


몇 해 뒤, 이 글을 보며 조금 더 성장한 우리의 모습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길 나는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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