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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카 Jan 26. 2023

명절을 보내며

좋은 어른이란 뭘까

명절을 보내며


시집온 지 벌써 7년, 어째 명절을 맞는 장소는 바뀌었는데 친정집에서 맞던 명절과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익숙한 장면들을 맞는 장점이라면, 굳이 여쭤보지 않아도 내가 도울 일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눈치껏 도우며 가벼운 궁뎅이의 소유자로 보일 수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단점은... 말해 뭘 해??

이 명절 하루, 아니 이 잠시를 위해 어머니 혼자 매일, 직장을 마치고 족히 3 일은 장을 보셔야 했다. 그렇게 장을 봐 쟁여둔 재료들로 하루 전 아침부터 여자 넷이 매달려 전과 산적등의 음식들을 오후 늦게 까지 하고 모자라, 설 당일 아침에도 일은 남아 있었다. 당일 아침엔 일찍 일어나 나물을 무치고 떡국 준비며, 제사상차림 준비에 여념이 없으셨다. 나는 큰 도움은 못 되었겠지만 하루 전부터 음식 하는 것을 도우며 어머니를 보조했다.

당일 아침,
제사상을 차리며 과일을 놓는 방향부터 해서, 제사상 위의 음식의 순서, 절을 하고 잔을 치는 순서까지 옥신각신 기억을 더듬어 제사를 지냈다. 주방에 있던 내게 어머님이 조용히 속삭이신다.

"아이고 저 순서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매년 저 난리야? 매년 지내도 매년 다르고 틀린 법을, 어떻게 저렇게 매년 같은 얘길 하는지 나는 아주 웃겨."

어머니의 말 끝에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속으론 이미 친정집 제사 때부터 스스로 해 온 생각과 같기에 어느 집이나 다를 게 하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정말 장보기부터 시작해 명절 준비는 일주일을 하신 것 같은데, 제사는 10분도 안 되어 끝이 나니 참 비합리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웃픈(?) 제사가 끝나자 상에 올려졌던 음식들을 모두 내려 바로바로 도마에서 썰어 상으로 올렸다. 죽은 조상들이 먼저 먹어서 질량이라도 조금 준 것인지 알 턱이 없을 음식들과 떡국, 갖가지 나물에 비빈 밥까지 상에 올려 온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신랑의 집은 아직도 작은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인지 여전히 친척 아재들이나 사촌들이 많이 왔다. 큰 상을 두 개나 펴고 서야 다 같이 둘러앉을 수 있는 인원들이 비좁은 거실에 옹기종기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조상일 때문에 모으는 계통장 얘길 꺼냈다. 그러자 너도 나도 마치 이날 만을 기다린 듯 차곡차곡 쌓아 놓았던 불만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엔 토론으로 시작하여 얼마 지나지 않자 언성이 조금씩 높아졌다.


"아니~ 이렇게 할 거면 돈 모으는 것도 그만하시고 제발 상의를 할 거면 술이 들어가기 전에 점잖게 상의를 하세요. 제가 시집온 지가 몇 년인데  어떻게 이렇게 조금의 발전도 없이 이건 아니지 않아요? 전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요. 그리고 앞으로 제사도 합치거나 조금씩 줄여나가고 어른들이 상의해서 시대에 맞춰 변할 건 변화를 주고 줄일 건 줄여서 아랫대에 물려주자고요. 아래로 갈수록 우리처럼 누가 다 하겠습니까. 어른들이 그래도 조금씩 줄여서 줘야 하는 게 맞지요. 제발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발전을 좀 하자고요. 난 어른들이 그렇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툰 건 아니지만 결국 어머니께서 나서고야 상황이 정리되었다.






엄마 제사, 처음부터 아예 시작을 말자.


작년 중순쯤 시어머니의 친정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아들들 사이에 딸은 어머니 혼자셨다.

"엄마 제사 처음부터 그냥 시작을 말아. 우리 대에야 우리가 지낸다고 하지만 아래 내려갈수록 관리도 안 되고 지내던 걸 아예 안 지내는 것도 그렇잖아. 정 지내고 싶다면 음식도 간단히 사서 하든 하고 집에서 지내지 말고 그냥 바로 모신 곳으로 들리던가 그렇게 해서 누구 하나만 죽어라 고생하는 건 시작도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는. 오빠들도 다 잘 생각해 봐."

어머니께서 오빠들에게 한 말씀이라고 하셨다.
과연 누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이런 말을 나서서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합리적인 생각이라 해도 쉽게 하지 못할 말일 것이다.
그것도 제사를 모실 당사자나, 아들 형제 중 하나도 아닌 시집간 딸이니 더욱 그러하지 않은가.






내가 맡지 못했기 때문에 더 나서서 도와야 하거늘


"어머니도 딸로서 그 말을 하시기가 참 힘드셨을 텐데요.. 정말 대단하세요."

"그래, 나라고 어디 그런 말이 하고 싶고, 쉬웠겠어? 보통 당사자 아닌 사람들은 내가 모실 것도 아닌데 내가 왜? 하며 나 몰라라 하는데, 그게 아니야. 당사자들은 말하기 더 어려워, 아무리 합리적인 말을 해봐야 모시기 싫어서 그런다는 말만 돌아오지. 그런데 당사자 아닌 사람들은 말하기 좀 더 쉽잖아. 친정 일도 그래, 오빠나 올케 언니들 중 누가 그 말을 할 수 있겠어? 그러니 내가 해야지.
사람들은 최신 폰이며, 기기들에 유행하는 것이라면 죄다 따라 하고 맞춰서 변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조상일은 발전 없이 옛 시대에 머물러 있냐는 말이야.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너무 비합리적이지 않아? 벌써 위에 어른들부터 조금씩 바꾸고 줄여 줬어야 내가 너희한테 더 줄여서 줄 수 있고 그런 거지 이런 것도 하루아침에 그냥 없앨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잖아. 그러니 현명한 어른들이라면 진정으로 지킬 건 지키되 변화할 건 변하고 줄일 건 줄여서 시대에 좀 맞춰 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제사도 왜 지내는지 의미도 모르고 그냥 지내는 거라고 지내는 게 아무 의미가 없잖아. 다 마음이 중요한 건데"








좋은 어른이란 뭘까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시며 비합리적이고 억울한 삶을 살며, 잘 한건 온데간데없고 오직 탓만 돌아오는 삶을 살다 한이 되어 마음의 병을 얻으신 친정어머니를 봐 왔고, 어린 시절 여러 가지 사건으로 마음의 상처를 얻은 나는 내 아이를 낳고 좋은 어른이 뭘까?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 하는 고민에서 늘 쉽게 답을 찾지 못했었다. 물론, 지금도 좋은 어른에 대해 단순하게 떠오르는 조건들이 막연히 있지만, 시집을 오고 어머니의 현명하신 언행과 조언들을 통해 좋은 어른이 무엇일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타인의 일에 말을 하기가 더 꺼려지는 세상이 되어 간다. 타인은 고사하고 가족 간에도 개인적 공간이나 시간이 더 늘어나면서 더욱 당사자가 아닌 일에는 쉽게 조언을 하거나 돕는 행동을 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당사자가 아니라서, 또는 당장 나와 연관이 없는 일이라서 모두가 나 몰라라 한다면, 과연 이대로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괜찮은 걸까.

그럼에도 좋은 어른이라면 먼저 겪은 일들에 대해 좋은 경험은 잘 지켜 물려주고, 반대로 좋지 않은 경험은 대물림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바꾸어 물려주려는 노력을 해서 아랫세대들에겐 시대에 맞춰 조금 더 편리하고 합리적인 세상을 물려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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