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쓴 지 겨우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니 글 쓰는 사람으로선 '삐약삐약'하는 귀여운 수준이라, 여전히 '작가'라는 호칭도 낯설게 느껴지나 봅니다. 언제쯤이면 이 호칭이 내게 꼭 맞는 옷처럼 편안하게 다가올까요. 그야, 요즘 같으면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아마도 최근 겪고 있는 '글태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마추어라 그럴까요? 글이라곤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요? 개인적으로 글감을 정하고 글을 쓰거나, 글감이 떠오른다고 하여 메모해 놓는 등의 좋은 습관들은 갖고 있는 게 전혀 없습니다. 그저머릿속 떠오르는 생각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영상으로 흘러야만 글로 베껴 쓰곤 했습니다. 그래서 제겐 생각이 글이고 , 글이 곧 생각이라 여겨지나 봅니다.
그런데 최근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이나 새로이 도전하는 일이, 익숙하던 모든 생각의 길과 생활 패턴을 부시고 전혀 새로운 길을 계획하고 헤쳐나가라고 하는 통에, 안 그래도 동선이 짧은 제 뇌의 회로가 마구 엉켜 버린 느낌입니다. 그러니 이미 부수적인 자극으로 스트레스 만렙을 찍은 저는, 머리에 쥐가 난 듯 어떤 생각도 떠올리고 싶지 않아졌습니다.
가끔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면, 공황장애(우울증) 후유증으로 지병처럼 돋는 일시적인 호흡곤란을 겪곤 하는데요. 최근 몇 번 그 증상이 발현되었습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인데 아니란 걸 알면서도 오래도록 미련스럽게 이어온, 그 근원부터 차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식하리만큼 과도하게 쌓은 큰 스트레스들을 치우려 보니, 생각보다 엄청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그제야 체감합니다. 어쩌면 조금 늦은 선택이지만, 그럼에도 비워 내길 시작했으니 앞으론 그 헛헛한 공간을 조금씩 유연한 생각들로 다시 채울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확신이 없습니다.
요 몇 달 글태기를 겪으며, 글이라면 정말 그만 쓰고 싶다는 생각이 일주일의 대부분을 자치했는데.. 습관이 참 무서운 것인지, 안 쓰면 안 되는 것인지. 그 일주일 중 하루쯤은 또 뭐라도 마구 쓰고 싶은 욕구가 갑작스레 솟구치곤 합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글감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우주 쓰레기 같이 둥둥 떠다니며 머릿속을 유영하는 그 생각들을 잡아 놓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참 환장할 노릇입니다.
이렇게 복닥거려 쉴 새 없는 어수선한 마음에도 엄마라는 직책은 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방학인 아이들을 며칠째 데리고 있으니, 이 상황에 글이 웬 말이란 말입니까. 당연히 기대하지 않고 내려놓아야 또 다른 스트레스를 부르지 않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는 저입니다.
그런데 오늘 낮 한가로이? 아이들을 좌우로 앉혀 '벌거벗은 임금님'이란 책을 읽어 주는데, 웬일인지 이 생각이란 놈이 온순한 양처럼 붙들리는 겁니다.
"엄마 임금님이 옷을 안 입었는데, 왜 사람들은 다 벗었다고 말을 못 하는 거야?"
아이의 물음에 알아들을 수 있게 잘 설명을 해주고선, 누군가 잡아끌듯 컴퓨터 앞으로 가 앉았습니다. 잠시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아이의 물음의 여운을 떠올리며 멍하게 생각에 잠깁니다.
"그러게 안 보이는 걸 왜 보인다고 할까? 엄마도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본단다. 어리석은 사람이 될까 봐 다들 그렇게 무서운 걸까?"
그리곤 잇따른 물음들이 대답을 원합니다.
실체 없는 옷을 만들어 멋지다는 아부로 이득을 챙기는 재단사들이 나쁜 걸까, 남들에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 보이지도 않는 옷을 보인다며 아는 척하는 신하들이 나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체통을 생각하여 벌거벗고도 그저 뽐내는데 열심인 임금님이 나쁜 걸까.
생각해 보니. 평소, 거짓으로 칭찬과 아부를 하며 이득을 차리는 재단사와 부족하면서 부족한 걸 숨기고 아는 척하는 신하들, 또 스스로의 벌거벗은 모습은 모르는 척 체통을 지키려는 임금님 모두 제가 정말 싫어하는 부류입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여전히 저는 그런 걸 곱게 두고 보지 못하는, 드러운 성격을 감출 수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아니, 그건 그런데 왜 오늘따라 생각이 '벌거벗은 임금님'에서 머물렀을까요.
어찌 됐든 아이들과의 즐거운? 독서 시간 덕분에 일주일 만에 겨우 또 하나의 글을 발행하여 이어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