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나는 첫 번째 출산 후 극도의 산후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전조는 충분했지만, 출산이 처음인 내가늘 스스로를 탓하던 그 미련스러움으로눈치채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여러 날의 가진통을 겪다가 드디어 진진통이 왔던 날, 나는 15시간의 진통에도 자궁문이 3센티에서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계속되는 심한 진통 때문인지 뱃속 아이는 물 밖을 나온 물고기처럼 파닥거렸고, 그 순간 아이의 심장박동이 불안정해지며 기계음이 요란해졌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 없이 응급으로 수술이 진행되었고 반신마취로 정신은 말짱히 깨어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지만, 아이가 나온 걸 확인하자마자 마취약 부작용으로 혈압이 하강했고 호흡곤란이 왔다. 그 후유증으로 나는 수술 트라우마가 생겼고, 산후우울증과 공황장애도 같이 찾아왔다.
아이를 낳은 첫날은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다음날 밤이 되자 불안과 공포 우울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나약한 탓이라며 스스로를 탓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사지 않으려 증상을 숨겨 왔다. 결국 미련스럽게 미루다 병을 더 키운 나는 극단적인 충동이 들어서야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고 1년 정도 정신과 상담과 약처방을 병행하며 조금씩 병세가 나아졌다.
그런데 이렇게도재수가 없을 수있을까? 어릴 때부터 이미 삶은 언제나 힘든 것이며, 고통이라면 충분히 맛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격한 불안과 공포들을 맛보고 나니, 다시는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란 인간은 정말 어리석은 망각의 동물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이가 돌즈음 되자 나는 다시 둘째를 계획했고, 둘째 때도 똑같이 마취약 부작용으로 호흡곤란을 겪었고, 출산 두 번째 날 산후우울증과 더불어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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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혼자라는 느낌
병증이 심할 때, 나는 아이와 단 둘이 집에 있지 못했다.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고, 모든 게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아이 옆에서 되려 내가 뱃속의 태아가 된 듯,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꼼짝 하지 못했다. 아이가 울면 분유를 주거나 소대변을 갈아 주는 등의 아주 기본 적인 것에만 기계적으로 몸이 움직였다. 아이를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아이를 보고도 무감각한 내가 너무 무서웠다.
결국 죽고 싶단 생각에까지 이르자, 언젠가 내가 죽거나 아이에게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제야 친정어머니께 도움을 청했다. 엄마는 평일엔 우리 집에 계시다가, 주말이 되면 아버지가 계시는 친정으로 돌아가길 반복하셨다.
참 못 할 짓이었다. 누군가 옆에 있어서 당장은 혼자 있지 않아도 된다는 불안에서 도망갈 수 있었지만, 또 다른 불안이 금세 나를 덮쳤다. 당시 엄마 또한 심한 공황장애를 겪고 있으셔서 눈에 초점이 없었고, 금방 출산한 딸에게 밥을 해 줄 생각도, 집을 치우거나 무엇을 보조해줘야 하는지 잘 인지하지 못하셨던 상태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 정신이 더욱 나갈 것 같이 불안해졌다. 그 당시 그런 엄마도 믿지 못하니 극도의 불안으로 신랑이 막 회사에서 돌아왔을 잠시, 겨우 3시간을 잤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아이러니 했다. 엄마가 있어서 덜 불안했지만, 엄마가 있어서 더 불안해졌다. 그럼에도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그렇게 갓 태어난 아이를 두고 양쪽으로 누운 모녀는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서롤 위로하고 의지했다. 그럼에도 중간에 누운 아이는 양쪽을 번갈아 보며 웃어줬다. 마치 둘 다 힘내라는 것 같았다.여전히 그때를 떠올리면, 두고두고 아이에게 미안하다.
4개월쯤 그런 생활이 이어졌던 때였다. 주말에 친정에 가 있던 엄마를 모셔 오던 날이었다. 아버지께서 나를 조용히 다른 방으로 부르셨다.
"너 이제 혼자 해봐야 되지 않겠나?"
"아빠,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저 아직은 혼자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금방 나아질게요. 네? 정말 죄송해요."
"인마, 그럼 아빠는? 아빠는 언제까지 혼자 있어야 돼?"
".................. 네, 혼자 해 볼게요. 오늘부터."
아버지의 말에 나오려던 눈물을 억지로 눌러 놓았다. 엄마를 데려가지 않는다는 소릴 듣고 남편은 의아해했지만, 입이 무거운 그는 짐작으로 아는 듯 아무것도 물어오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차 안에서 나는 숨죽여 울었고, 집에 도착할 동안에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당장 혼자 있을 자신이 없었다. 여전히 나는 죽고 싶었고, 모든 게 무서웠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 순간 내겐 보호자가 꼭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 극단적인 상황에도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지 못했다. 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딸이 당장 죽을 것 같다고,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족들에게 부탁한 적이 없는데, 그런 내가 이렇게 부탁하면, 한 번은 좀 맘 편히 들어주면 안 되는 것이냐고 따지듯 원망을 내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엄마와 같이 마음의 상처가 많으신 분이니, 혹여 당시 나처럼 혼자 있지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내 머리가 복잡해서 더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아버지께 왜냐고 이율 묻지 못했다. 혹여라도 아버지가 나 정도로 고통스럽지 않은데도 스스로 해보라며 내 옆의 엄마를 데려가 버린 것이라면 마음에 너무 큰 상처가 될 것 같았고, 반대로 아버지도 나만큼이나 극심한 고통으로 혼자 있지 못하시는 상태라고 듣게 되더라도 마음이 아픈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나는 듣지도 못했으면서 혹시라도 하는죄책감에 마음이 아팠다. 어떤 이유라도 아플 것이기에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아버지 옆에 엄마를 두고 오던 그날,세상엔 오롯이 나 혼자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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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에 수없이 오는 상처
사실,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즈음이었을 당시,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언니로 인해, 엄마는 자살시도를 여러 번 했었다. 당시 내가 본 것만 세 번이었다.
같은 집에 살아도 늘 예감 직감이 누구보다 빨랐던 나. 신기하게도 그런 내가 느낌이 이상해서 엄마를 찾으면 엄마는 약을 먹기 직전이었다. 한두 번은 직전에 말렸지만, 세 번째는 약을 먹은 후였고, 나는 유서를 읽어야 했다.
"경이아빠. 나는 하늘나라에서 경이를 지킬게요. 너무 많은 짐을 남기고 가서 미안해요."
어렸던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 남매 중, 큰 언니만 자식이라서 나머지 셋을 두고 세상을 등지려 하다니, 그것도 어린 딸이 두 번이나 말리고,절대 그러지 않기로 그 작은 고사리 손과 새끼손가락까지 걸어 약속을하고, 또 했으면서...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어려서 내 생각들의 형태를 정확히 정의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미 난 어릴 때부터 인간의 본질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라서, 극단적인 힘든 상황이 오면 부모도 자식을 버리고 갈 수 있고, 힘든 무엇 때문이라면 죽음으로 도망갈 수도 있으며, 꼭 지켜져야 할 약속임에도 순식간에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실망감에서 시작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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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도, 넘어져도 괜찮아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난 그때의 엄마의 나이가 되어있었고, 나 또한 자식을 두고 죽음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엄마의 마음과 행동들이 내게 조금은 설명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엄마도 나도 결국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죽고 싶은 고비를겪었지만, 결국그 사랑 때문에 지옥 같던길고 긴 터널을 걸어 나올 수있었다는 걸 말이다.아마도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난 목숨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사실 이런 판단이 가능해진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상처받은 마음으로 부정적인 단면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원망하는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만 해도 극단적인 상황일 땐, 부모도 자식도 자신 스스로가최우선이라 인간은 정말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그 인간의 어떤 본질에 늘 회의감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글을만나고 치유를 통해, 내가 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면으로도 눈을 돌릴 수 있었다.나중에야 알았지만 엄마는 당시 길도 찾지 못할 정도로 공황장애가 심하셨다고 했다. 그럼에도 자식을 살리려는 일념 하나로 모든 두려움을 견디고 내게 온 것이었다. 나 또한,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 특히 내 자식을 보고 오직 살아내자는 일념으로 자살 충동과 공황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 그것은, 그렇게 나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위하는 마음은인간의 본질을 뛰어넘는어떤 경이로운 힘을 갖고 있다는방증이 아닐까.
그래서 난예전의 나와 같이,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아파하고 있는 분들에게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져도, 넘어져도 괜찮다고,
당신은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시련과 한계에 맞서는 마음으로, 스스로와그들을 지키고 있는, 경이로운 능력을 가진멋진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