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 4학년 즈음이었던 거 같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이 되면, 나는 마을 어귀에 있던 비석 주위를 서성였다. 그때의 평일 저녁 시간은 내게 하루 중 가장 불안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삼 면이 산으로 둘러 쌓인 오지 같은 마을에 살아서일까? 마을을 오고 가는 버스는 끼니마다 각각 두 번이 고작이었다. 그러니 마을로 들어오는 저녁 버스를 놓치고 나면 다른 동네에 내려 도보로 30분은 족히 걸어야 집에 올 수 있었다.
당시 중학생이던 큰언니는 이상하게 늘 탈 수 있는 버스를 놓치고 그 번거로운 버스를 택하는 날이 많았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언니의 그런 행동이 반복되자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교회 앞 제대로 된 버스 승강장이 아닌, 정 반대쪽인 마을 출구의 비석에 서서 언니를 기다렸다.
이제나 올까 저 제나 올까... 그 시간, 믿는 종교도 하나 없는 주제에 애가 탄 마음을 가누지 못해 어딘가를 향해 자꾸만 기도를 올렸다. '오늘은 언니가 꼭 오게 해 주세요'. 이미 마을엔 새카만 어둠이 덮쳐 날 집어삼키고 소화를 시도하는데도 불구하고, 언니의 소식이 깜깜무소식이던 날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걸음 하염없는 눈물로 발자국을 남겨야 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집 안에 울리는 요란 한 사이렌 소릴 견뎌내야 했다.
부모님은 서롤 탓하며 싸우고,,, 아버지는 늦은 시간임에도 수소문해서 가까운 동네나 학교 근처, 때론 먼 시내에까지 찾아다니셨고, 온 가족이 애가 타는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 불안한 날이 반복되었으니, 막차가 마을을 지난 후에도 언니의 발걸음 소리가 집 마당에 닿지 않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걸음은 자연스레 마을 비석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기다림을 싫어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꼭 오겠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사람을 기다리며 애가 타는 마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믿음이 산산이 부서졌던 마음. 그런 허탈감은 어린 나이에 내가 소화하기엔 너무도 힘든 감정이었다.
약보다 글
글을 쓰기 전, 주기적으로 꿨던 꿈이 있었다. 이미 서른 중반의 어른임에도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하는 절친을 돕다가, 되려 왕따를 당하며 절친에게 까지 배신당했던 그때의 상황이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꿈이었다. 꿈속에서의 나와 그 친구들은 여전히 몸과 마음이 덜 자란 꼬꼬마들이다.
얼마나 썼을 때였을까.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 나를 괴롭혀 왔던 그 꿈을 꾸지 않고 있다는 걸 인지했다.
글을 쓸 때면 내게 상처로 남은 하나의 사건들이 마치 그 시절, 그 시간으로 돌아간 듯 머릿속 영상으로 재현됐다. 꾸준히 쓴 지 일 년이 넘은 지금 찬찬히 시간을 거슬러 짚어보니, 나는 그렇게 영상을 떠올려 쓸 때마다 어른이 된 내가 어렸던 나를 안아주고, 때론 제삼자가 되어 나를 다독여 주고 있었던 걸 깨닫는다.그리고 내 글을 읽고 함께 공감해 주고 격려를 해준 많은 분들 덕분에 내 상처는 조금씩 옅어져 트라우마들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그렇게 먹었던 정신과 약보다 글이 내겐 명약인 것이다.
숨겨져 있던 또 다른 방
오늘은 몸이 피곤하여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이른 낮잠을 청했다. 낮잠은 피곤할 때만 자서 그런지 얕은 잠을 자게 되고 꼭 꿈을 꾸게 된다. 그래서 낮잠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피곤을 이기지 못 한 난, 어느새또 꿈속에 와 있다.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나. 괜스레 발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가만두지 못한다. 나는 저 멀리 산이 가로막아 도로가 끝나 보이는 지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왠지 너무나 익숙한 느낌의 땅거미가 내려앉고 나는 조금씩 불안하고 서러운 마음이 올라온다.
기다리던 무엇을 만나지 못한 것일까? 겁이 많은 나는 겨우 몇 개의 희미한 가로등을 의지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꿈속의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무서운 시간 언니는 어디서 뭘 하는 걸까? 지금 안전한 걸까? 아빠 엄마는 오늘도 싸우겠구나.. 집에 가서 이 얘길 어떻게 전하지... 어떻게 하지... 엉~ 엉~
넓지도 않은 작은 마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끝나지 않는다. 그 기나 긴 길을 걸으며 나는 하염없이 목놓아 울고 있다.
얼마나 더 써야 하는 걸까
일 년 넘게 쓰며, 더 이상 내속엔 열지 못한 방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근 더 이상 쓸 게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그것이 아니라면 너무나 많은 아픔을 한꺼번에 토해 낸 탓인지, 온몸의 육수가 다 빠져나간 것처럼 쓸 힘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의 사랑이 무료해진 듯 요즘 글태기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지겨울지도 모를, 반복되는 아픔을 쓰면서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글을 쓰며 감정과 체력 소모가 너무 많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금 잠에서 깬 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다. 왜인지 기분이 더럽다. 마치 내게 '힝 속았지?'라며 무의식이 내 의식을 또다시 조롱하는 것만 같다. 이제 끝일 것 같던, 더 쓰일 게 없을 것 같던 내 아픔의 방이 또 하나 열린 것이다. 살면서 나는 언제, 왜 이렇게나 많은 방을 촘촘히 지어 놓은 걸까. 나는 왜 바보같이 나보다 타인을 그렇게나 위하고 산 것일까? 이렇게 아프고 괴로울 거면서...
문득, 여전히 스스로도 모르는 내 속의 숨겨진 방들이 너무나 많을 것을 상상하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막 일어나 무의식에게 한 방 먹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내게, 아픔은 또 쓰라 한다. 글이 너를 다독이고 안을 것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