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캐가 유행이라는데 생각해보니 나는 부캐가 꽤나 많다. 크게는 딸, 며느리, 엄마, 아내, 노트북 판매자, 아이디어스 작가, 브런치 작가. 작게는 우리 집 전용 요리사, 전용 청소부, 전용 미용사, 전용 마사지사, 전용 엔지니어 등등
사실 이 부캐들만 열심히 활동해도 하루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다. 가끔은 매일 심심하다는 내 지인의 시간을 몰래 훔쳐 쓰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분신술을 써서 똑같은 나를 몇 명을 만들어 본채는 쉬게 하고 나머지 복사채들을 돌리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도 한다. 그렇게 시간에 쫓기면서도 나는 늘 할 일을 찾는다. 직장을 갖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일 안 할 거야. 신랑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평생 살 거야."
"내가 지금 돈은 벌지만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게 아니야. 그냥 무료해서 하는 거야."
주위에 은근 마음 편해 보이는 소리를 하는 지인들이 많다. 돈이 많아서? 경제적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그냥'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개 낙천적이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인생 다가오지도 않은 먼 미래를 지금 왜 걱정하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진심 부럽지만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하다.
나와 비슷한 성격의 사람들은 똑같은 질문을 두고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우리 부부가 노후에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아무 노동 없이도 들어오는 수익이 한 달에 적어도 이. 삼백은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신랑 혼자서 다달이 벌어 오는 돈을토대로 몇 년을 대충 계산 때려(?) 봐도 금방 깨달음이 온다. 맞벌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소위 말하는 금수저가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맞벌이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난 직장을 갖지 않고 집에서 돈을 벌겠어. 시작은 미약하겠지만 그 끝은 창대하게."
몇 해전 신랑에게 호기롭게 내뱉은 말이다. 처음 내 말에 신랑은 콧방귀를 뀌며 계속해서 직장을 갖길 원했다. '퇴직금', '연금'을 얘기하면서 말이다.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나 여러 부류의 직종에서 일한 경험은 많았지만 이렇다 할 경력이나 전문적 노하우를 갖고 있지 않은 애 둘 맘이 그런 걸 바라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더 큰 욕심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얼마나 될지 모르는 '퇴직금 ', '연금'보다 더 확실한 미래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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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출산하고 육 개월쯤 됐을 때였다. 두 번째 산후우울증을 막 이겨내고 있을 때, 내겐 어떤 흥밋거리가 필요했다. 한 번 겪은 산후우울증을 너무나 잘 알기에 빠른 회복을 위해 정신 팔 곳이 필요했다. 산후우울증을 벗어나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마자 일을 꾸몄다.
당시 채소 마켓이 막 유행하고 있었다. 집에 있는 중고 물품들을 처분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운동기구며, 가방, 지갑 등 쓰지 않는 물건들을 채소 마켓에 올렸다. 나름 예쁘게 디피하고 구도까지 생각하며 찍고 글도 상세히 적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올리는 물건마다 너무 잘 팔리는 게 아닌가. 짧은 시간 안에 완판을 한 데다가 안 쓰는 물건은 집 밖을 나가서 훤칠해지고 거의 사십만 원이란 돈이 내손에 들어왔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런 게 바로 일석이조지.
우연찮은 중고거래의 시작. 살면서 처음으로 내 재능을 발견한 때이다. 중고 제품들을 팔면서 가격을 책정할 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세차익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들었다. 지갑, 가방 사서 팔아 봐야겠다. 그렇게 삼 개월간 지갑과 가방을 사서 판매를 해 봤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있었다. 그 경험에 부스터를 달기 위해 나는 그간 벌어들인 돈으로 노트북 중고를 샀다. 그렇게 한 대가 두 대가 되고, 두 대가 네 대가 되기를 반복하며 중고 노트북을 판매 하는 판매자가 되었다.
처음 이십만 원이 채 되지 않은 수익이 발생했을 때, 까까 사 먹으란 말을 하던 신랑도 어느 달은 본인의 월급보다 조금 더 버는 달도 생겨나자 조금씩 시선이 틀려지기 시작했다.
"내가 번 돈으로도 갚고, 쓰고, 모으고 다 되니까 자기가 번 돈은 다 모으자."
"엥? 까까 사 먹으라며~!"
이렇게 사람은 화장실 나올 때 마음이 틀려지는 법.
노트북 중고 판매를 하면서 또 알지 못했던 재능을 하나 더 발견했다. 노트북 하판을 열어 HDD를 SSD로 업그레이드하고, 램 4기가를 8기가로 업그레이드하고, 팬 소음이나 발열이 있으면 팬 청소를 하고, 급기야 액정 교체, 키보드 알 교체, 결국엔 메인보드 교체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장난감이 고장 나거나 집에 서랍이 고장 나도 해체해서 구조나 원리를 보면 감이 왔다. 생각한 대로 고치면 새것이 되었다. 죽어가던 물건들이 내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었다. 노트북도 그랬다.
"에라이 모르겠다. 노트북 하나 날려 먹어도 비싼 값 주고 배운다 생각하지 뭐."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걸 어린 나이에 이미 뼈저리게 깨달은 나는 배움에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소프트웨어적인 오류 문제건, 하드웨어적인 문제 건 스스로 시간 들이고 품을 팔아 찾고 해결하며 하나씩 내 것이 되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그렇게 노력하고 성장하여 비용과 쓴 돈들을 제외하면 이 년만에 사천만 원의 순이익을 모았다.
"자기는 내가 서포트해주면 뭐든 잘할 것 같아.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나는 그저 매달 안정적인 돈을 벌어 올게."
그제야 신랑도 나를 조금은 인정해주기시작했다. 그 후로 더 이상 직장을 갖으란 말은 듣지 않았고 그저 뭐든 믿고 응원해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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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노트북 판매를 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가며 도전을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부캐들이 꽤 많이 생겼다.
브런치 작가. 이 또한 부업을 알아보다가 시작되었다. 오 개월 전, 일 분 안에 만원을 벌 수 있다는 유튜브 영상을 시작으로 프로젝트 얼룩소를 시작했다. 오십자 이상만 쓰면 되고, 하루 백 명에게 만원씩 보상이 주어졌으며, 전문 에디터님들의 선택을 받은 글은 에디터 픽과 쏘 프라이즈 픽으로 이십만 원의 보상도 주어졌다. 참 획기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글을 쓰는데 돈을 줄까. 내 글자 오십 자가 만원의 가치가 되나? 그런 의문으로 시작된 게 나의 글이다.
참 이상했다. 한 번도 글을 써 본 적이 없어서 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쓰기 시작하면 막힘없이 써졌다. 어느새 나는 오십 자를 넘어 시키지도 않은 긴 글들을 쓰고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 글이란 게 몇 번 쓰면 고갈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쓸 이야기와 할 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그런 내 글을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호응해 준다는 것이었다. 분명 어둡고 아픈 글이 주가 된 내 이야기들에 사람들은 좋아요를 눌러주고 격려의 답글들을 많이 달아주었다.
그때 글의 힘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내 이야기로 위로받고 위로를 전할 수 있었다. 힘내라는 직설적인 글도 아니었고 밝고 재미난 글도 아니었다. 그저 아픈 글이었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늘 내 아픈 날들을 원망만 했는데 내 아픔이 고스란히 쓰여 나에게 또 누군가에게 위로가 또는 희망이 될 수 있다니 참 다행이었다. 처음으로 내 아픈 날들에 고맙게 느껴지는 날들이었다.
그러다가 글 벗으로 친분을 쌓고 지내던 작가님께 브런치란 공간을 소개받았다. 사실 브런치에 대해서 그저 글을 좋아하는 분들이 글을 쓰는 공간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사전 조사도 없이 신청하게 되었다. 난 뭐든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이라 일단 신청부터 했다. 사실 당연히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쉽게 도전했던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였다. 한 번만에 되다니. 그렇게 글 쓴 지 삼 개월 만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란 공간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얼룩소에서 미리 썼던 글들을 업데이트한 것 외에 글을 쓰지 못했다. 알고 보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 곳이라서 많이 놀랐기 때문이다. 내가 잘 알아보지도 않았고 한 번만에 통과해서 잘 몰랐을 뿐이지 이곳은 원하는 마음만으론 쉽게 작가가 되긴 힘든 곳이었고 책을 출간하신 작가 분들이나 글을 잘 쓰시는 작가분들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주눅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이런 곳에 어떻게 한 번만에 통과한 것이지?"
축하해주시는 분들께 운이 좋았다고 대답했지만 알고 보니 운이어도 놀랍고, 아니라면 더 놀라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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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몇 개월간 꾸준히 활동하던 얼룩소를 탈퇴했다. 더 이상 나는 그곳의 취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 얼룩소를 탈퇴하고 난 더 이상 인위적으로 글을 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간 보상을 얻기 위해 시작된 글로 보상이 있는 글을 써 왔고, 보상이 없는 글을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실 인위적인 글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이대로 글을 그만 쓴다면. 이대로 브런치도 영영 이별한다면. 이대로 글을 쓸 기회를 놓친다면 언젠간 참 많이 후회할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 계기 이후, 보상 없이 조건 없이 글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글이 알고 싶어 졌고, 또 나도 알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아무 경계와 제재 없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고 싶은 글을 썼다. 그제야 글 쓰는 게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은 브런치란 공간에 익숙해져 간다.
지금은 주눅 들지 않고, 눈치 보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지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적을 것이다.
좋은 글은 좋은 목소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좋은 목소리보다 더 훌륭한 악기는 없고, 좋은 목소리에 담은 진심 하나면 화려한 기교 없는 담백한 노래 한 곡으로도충분한 감동과 울림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좋은 글은 화려한 기교나 훌륭한 언어를 담고 있지 않아도 진심이 담긴 글이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그랬다. 대단한 사람이 되길 바라기보다 평범하고 조금은 부족한 사람의 대표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고 더 열심히 도전해서 이루고 싶은 것들이 많다. 나와 같이 지극히 평범하고 때론 조금 부족한 사람들도 뭐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기때문이다.
앞으로 쓰이는 내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 비록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많지 않은 부족한 글일지라도 아주 평범하고 때론 부족한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어 닿는 그런 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