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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고전

by 넷마인


2024년 갑진년.


코로나시국 3년을 거치며. 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전염병보다 투자라든지 유동성이라든지 하는 경제용어에 더 민감하고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 그 2~3년간 전세계에서 국고를 거의 무한정 풀어 현금으로 국민들에게 지원금을 쥐어주고, 대출이자를 0에 가깝게 만들어줬다. 어째서 그런 돈들이 아파트나 주식코인에 흘러들어 돈벼락이 생기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던 사람들도 못이기는 척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제란 궁극적으로 그 목표가 돈으로 귀결되고, 인간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평범한 시민인 한 친구는 요즘 나를 만날 때마다, 모든 원흉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성토한다. 그 책이 사람들을 망쳐놨다는 것이다. 땀흘려 일하는 고귀한 노동의 가치를 외면하고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해야한다며 부추겼다고.... 어떤 현상에 원흉이 있을거라는 의심은 그게 원흉이라는 확신으로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는 그냥 입을 닫았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그 책은 나온 지가 30년이 되어간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현대경제사회에서 이미 고전인 셈이다. 당시 80~90년대 북미에선 이런 자서전적 자기계발서들이 인기가 많았지만 한국은 그런 시절이 아니었기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고, 친구가 기억하는 첫 제테크 선동 책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많이 앞서 나간 책이었다.


그 책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점이 친구의 말대로 열심히 직장다니고 노동해서 버는 돈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으며, 내돈 안들이고 사업을 하고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를 해야한다고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한 것이 었을까? 그말이 맞다면 책을 읽은 사람은 다 부자가 되었어야 할테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독자들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통해 부자가 된 사람은 저자 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한다.

나에게는 투자하라, 사업하라는 내용들보다 더 쇼킹한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를 가난한 아빠라고 지칭하고, 사업가였던 친구의 아버지를 부자 아빠라고 지칭하며 대표성을 부여하는데, 그의 아버지는 박사학위에 교수에... 교육감까지 지낸, 미국에서도 부촌인 하와이에 거주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었다. 내가 생각한 가난한 아빠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 가정을 꾸린, 현실적으로 누구나 꿈꾸는 부자에 가까웠다. 그게 내가 가장 놀라웠던 지점이었다.


1970년에 결혼한 우리 부모님은 평범한 직장인인 아버지와 어머니, 두 남매로 이뤄진 전형적인 4인가족이었다. 어느날 내가 7살이 되던 해 아파트에 담첨되어 첫집을 장만하게 되면서 그 집이 6개월만에 두 배가 되는 걸 경험했다고 한다. 몇 번을 더 넓은 새아파트로 이사를 다녔고. 그때마다 은행이자가 20%에 육박하는데도 거리낌없이 대출을 받고 주변에서도 돈을 빌려 소위 영끌을 하셨다. 그런데 4번째로 이사간 집에서 탈이 나버렸다. 1980년(이제야 알게되었지만 오일쇼크로 경제가 엉망이 된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고. 어머니가 운영하던 백화점 매장은 장사가 안됐다. 빚은 이자에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느새 집에는 딱지가 붙고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한번에 제대로 망하지 않으면 또 망하는 법이다. 다시 일자리를 찾고 회복하는가 싶더니, 같은 일을 정확히 8년 뒤 또 겪은 우리 식구들은 뿔뿔히 흩어져 친척집을 전전했다. 단칸방 월세집으로 겨우 자리잡았고 나와 동생은 지옥같은 학령기를 보내야 했다. 부모님은 빚은 절대로 져서는 안되며, 아껴서 조금씩 저축하고 사는 게 가장 좋은 거라고 내내 후회하며 사셨다. 누군가는 같은 상황에 정말로 벼락부자가 되기도 했겠지만, 그 시절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엔 단 한 명도 없었다.


빚도 없고 좋은 직장에 사회적 명예도 가진 자신의 아버지를 가난한 아빠라고 부르며, 평생 진짜 가난해 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로버트 기요사키는 대체 왜 이런 책을 냈을까?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달러를 계속 발행하는 미국의 시스템 때문에 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모든 물건의 가격이 점점 오를 것이고, 실상 그것은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이라는 걸. 1930년 대공황 때는 생산성증가로 끊임없이 늘어난 상품들이 한쪽에선 팔리지 않고 쌓여서 바다에 버려지고, 한쪽에선 굶어죽는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상품대신 돈이 그 상황을 대신한걸까? 세상은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의 시대로 완전히 진입했고. 절약하며 저축만 하면 그냥 돈이 사라지는 세상이 되었으며, 자산으로 쏠리는 돈때문에 집값이 오르는 속도를 임금은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이다.


미국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국가라 일찍 겪었겠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 돈이 넘치는 나라가 아니었는데.... IMF외환위기와 2008금융위기를 겪으며 점차 현실이 되었다. 신용카드로 당장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살 수 있고. 개인에겐 보증인 없이 절대로 대출을 안해주던 은행이 대출도 쉽게 해주며 금리는 점점 내려가서 1~2%가 되었다. 빚을 지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된 것이다. 빚을 얻어 물건을 살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화페량를 증가시키는 것이고,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이 필수적으로 오게 된다. (MMT이론)


월급으로 저축하기도 힘든데, 이제는 저축을 하면서 또 그 돈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게끔 어딘가에 투자를 하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이런 현상들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다. 원흉은 책이 아니라 제도의 장점을 단점으로 바꿔버리는, 멈추지 않는 인간의 탐욕에 있다.


그가 본인의 인사이트를 저서로 공유하는 점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본인만 알고 있었어야 더 부자가 되었을텐데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정말로 책을 써서 돈을 벌려고 했을까?


엄청나게 많아진 돈들이 어떻게 노동과 상품가치를 속이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중산층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걸 예감한 것 같다. 상류층으로 가기보다는 대부분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이 부자가 되어야만 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나는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단지 추락하기 싫은 불안감에 부자가 되었을 뿐이라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적어도 내 기준에는 이미 부자들인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었다. 자신의 재산을 지키라고. 안그러면 점점 가난해진다고.... 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위험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빚과 투자란 40년전 우리집이 망했던 만큼이나 지금도 똑같이 위험하다. 더구나 계층사다리는 점점 없어지니, 파산했다가 다시 회복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하여 이 책은 유명하기는 해도 명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디에도 공동체에 대한 고찰이 보이지 않는다. 나보다 더 가난하거나 가난해 질 사람들에 대한 연민도 없다. 그저 각자 능력껏 제도의 틈을 노려 부자가 되라며 자본주의가 애써 숨겨놓은 규칙 하나를 누설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일생 자본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오해하고 살다 죽는지도 모른다. 최초에 애덤 스미스가 있었고 그 뒤 칼 마르크스가 있었다. 두 사람의 위대함은 새로운 사회경제체제를 제시함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이론들이 오로지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며칠전 로버트 기요사키를 뉴스에서 우연히 봤다. 미국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 유통시키고 있고, 정부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고 있으니 비트코인과 금을 사라고 말한다. 여전히 건재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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