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두 번째 이야기
첫 달림 뽕(?)을 맞고 글을 쓴 게 1월 29일이니 달리기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좀 지나고 있다. 그간 열심히 달렸다고 말하기엔 자신이 없지만 게으르지 않게 달렸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달리는 거리도 조금씩 늘려 나갔고, 달리는 속도도 어느 정도는 높아졌다.
거리와 속도가 향상되었다 해서 게으르지 않았다는 증명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나마 말할 수 있는 건 석 달 동안 내 일상에서 달리기를 늘 곁에 뒀기 때문이다.
눈을 뜨면 먼저 몸 상태를 체크하고 달릴지 여부를 결정했고, 고단한 날에도 눈을 비비며 꾸역꾸역 나가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는 평소보다 조금이나마 더 길게 달려보고자 코스를 짜기도 했고, 틈 나는 대로 달리기 관련 책도 읽고, 훈련 기술 설명 영상도 봤다. 여행을 가서도 달리기를 놓으려 들지 않았으며 달린 거리와 느낌을 일기에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 정도 관심이라면 최소한 달리기를 대충 대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석 달 동안 난 달리기를 일상으로 편입시키 위해 분주했다.
하지만 최근 달리기에 대한 관심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과정에 있으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의문점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달림 뽕(?)을 맞고 달릴 때 느꼈던 감정이 점차 희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동적 명상을 한다는 그런 뽕(?)이 뒷전으로 밀려났달까.
요즘의 나는 그저 잘 달리기 위해 기술적으로만 접근하고 있어 보인다. 어떻게 하면 다리 근육이 강해질까? 어떻게 하면 부상 없이 더 긴 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록을 줄일까? 뭐 다 같은 목적의 고민이다. 잘 달리기 위한 기술을 늘리는 것에만 욕심을 부리고 있다.
달리기를 하면 심폐와 하체는 근력이 생긴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달림 뽕을 맞았을 때는 신체 근력 강화가 목적이 아니었다. 달리는 동안 맴도는 생각들, 몸이 뜨거워지며 느껴지는 쾌감 같은 것에 매료되었었는데 지금은 그저 훈련으로서의 달리기에 집착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접근이 잘못된 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고 있다. 어쩌면 달리기와 친해지는 당연한 과정의 계단을 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은 두렵다. 계속 이 계단에서 머무르게 될까 봐 순간 걱정이 된다.
때문에 처음 달리기를 했을 때 느낌을 되살려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의 달리기는 운동으로서의 의미 만을 가지지 않았다. 누구도 알려주거나 지시하지 않는 환경 속에서 오롯이 내 의지로만 무거운 다리를 딛고, 심박을 올리면서 느껴지는 조그마한 성취를 찾는 즐거움이 있었다.
같은 거리, 같은 속도를 달려도 처음의 달리기는 매일매일이 달랐다. 숨이 차기 전엔 어제의 잘못한 행동에 대한 반성도 있었고, 숨이 차면서 건강한 하루가 시작된 것 같은 감정에 대한 감사도 있었다.
“헉, 헉”, 갈수록 거칠어지는 숨소리는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소리 같았고, 살기 위한 내 노력의 소리같기도 했으며 잘 살고 싶다는 의지의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달리면서 생각하는 오늘의 내 하루는 대체로 걱정보다는 도전이었고, 후회보다는 감사였다. 정신 근력이 강해지는 것만 같았다.
처음의 달리기를 한 후에 항상 몸 어딘가가 아팠지만 딱히 걱정스럽진 않았다. 아픈 것에 대한 걱정보다 뭔지 잘 모르지만 성취감 같은 것이 몸에 채워진 것 같은 느낌이 더 앞 서 있었다.
지금 내 관절과 근육은 어느정도 단련이 되었는 지 달리고 나서도 딱히 몸이 아프지는 않다. 그럼에도 헛헛하고 허전해지는 기분이 울컥 밀려온다. 왜일까? 이유를 더듬어보니 요즘의 내 달리기는 생각이란 놈이 빠져버렸다. 만족이란 놈이 빠져버렸다. 감사라는 놈이 빠져버렸다.
그저 어제보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네, 어제보다 속도가 느려졌네 등의 후회만 남아있다.(가끔은 어제보다 빨라지긴 해도 감사의 마음보다는 이것밖에 안 빨라졌네? 하는 또 다른 성질의 후회가 남는다.)
매 하루마다 성취와 감사가 충만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취와 감사를 완전히 놓친 채로 운동으로서의 달리기만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성취와 감사를 잊은 채 운동으로서의 달리기에만 집착하게 될까 봐 문득 겁이 나 과거를 되짚어 보는 중이다.
달리기는 내가 늘 즐기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즐기다 보면 잘해지기도 할 것이지만, 달리기 자체를 내가 잘하는 무언가로 만들려고 집착해서는 안된다.
조금은 침착해져야 한다. 본질을 다시금 곱씹어야 한다. 달리면서 들리는 심장 박동을, 내 코와 입이 내뱉는 거친 숨소리를, 머릿속을 떠도는 상념과 감사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1킬로마다 울리는 속도계 음성에 대한 집착을 내려놔야 한다. 메트로폼과 맞추려는 발구름 숫자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스트라바에 찍히는 거리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을 멀리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 더 멀리, 조금 더 길게, 조금 더 즐겁게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한없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달리기다. 어떤 점이 좋아서 매력적이었는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점 때문에 내가 그를 혹은 그녀를 좋아했는지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나는 금세 본질을 놓쳐버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