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젠 진짜 입원하러 갈 일만 남았다.
입원 당일 오전 10시.
병원에서는 2시까지 오라는데 우린 뭐 좋은 일이라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삼성서울병원으로 가는 길을 운전하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묻고 보니 마치 군입대를 앞둔 친구에게 묻는 듯한? 사형수의 마지막 식사를 묻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후회하려는 찰나 아내는 배시시 웃으며 "닭갈비가 먹고 싶어요." 한다.
다행이다. 혼자 오버한 것 같다.
나는 일원동 닭갈비집을 검색하고 그리로 차를 몰았다. 처음 가 본 동네, 처음 가 본 닭갈비 집은 희한하게 맛있었다. 입원 전 마지막 식사라서 맛있었는지, 그 집이 원래 맛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극소식좌인 아내가 남김없이 끝까지 먹었다는 사실이다. "진짜 맛있다"는 소리를 연발하면서.
마음이 외로우면 허기가 진다고 했는데, 마음이 외로웠던 걸까?
볶음밥까지 박박 긁어대며 배를 채운 우리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 시스템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사람이 엄청 바글거리는 정신없는 병원이었지만 절차도, 동선도 모두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삼성.'이라는 감탄이 스쳤다.
간호사로부터 입원 절차 설명을 들었다. 현재 입원실이 부족해서 특실만 남아있다고 했다.
간호사는 특실 카탈로그를 펼치고 선택하라고 한다.
정말 입원실이 없는 건지, 아니면 '역시 삼성'이라서 병원 수익차원에서 특실 한번 찍어주고 가는 건지? 하는 의심이 잠시 일렁였다.
내 흔들리는 눈빛이 읽힌 것일까?
간호사는 일단 특실로 입원하고, 이후 일반실 자리가 나면 바로 옮겨주겠다고 한다.
하루 정도면 옮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여준다. 두 번째 다행이다.
특실 카탈로그에는 굉장히 비싼 A실과, 몹시 비싼 B실, 제법 비싼 C실이 있었다.
(C실도 5성급 호텔 1박 숙박료보다 훨씬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아내는 당연히 제법 비싸지만 그중 가장 저렴한 C에 손가락을 얹어놓는다.
"몹시 비싼 B실로 할게요." 나는 잽싸게 아내의 손가락을 치우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동그래진 아내의 눈을 보며 연달아 말했다. "하루라는데 그냥 즐기자"
아내가 빙긋 웃는다.
즐기자면서도 제일 비싼 A실은 제켜버린 나는 조금 머쓱한 기분이었지만 괜찮다.
아내가 웃었으니까.
친절한 간호사는 우리를 입원실로 안내했다.
특실로 안내받은 아내는 안 그래도 수술 전에 회사 일 마무리 지을 게 있어서 줌(ZOOM) 회의가 잡혀 있었는데, 호사스러운 배경에서 마음 편히 회의하겠다며 좋아한다.
회사사람들이 병실 배경 보고 우리 부자인 줄 알겠다며 헤헤거리기까지 한다.
'암 수술을 코 앞에 두고도 헤헤거릴 정도의 멘털을 가진' 저 여자가 대단한 것일까?
그런 여자와 살고 있는 내가 대단한 것일까?
아내는 환자복으로 환복을 했다. 이제 어엿한(?) 환자 같다. 간호사는 수시로 찾아와 병원 수칙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런저런 서류에 사인을 시키고, 채혈을 하고, 체중을 재고, 여러 물품을 가져다줬다.
그러는 틈새 아내는 회의도 무사히 마쳤다.
아무튼 입원 첫날의 오후 시간은 내내 분주했다.
분주한 것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창 밖으로 어둠이 깔리자 우리 병실에도 여유가 내려앉았다.
아내와 나는 그제야 병실을 구석구석 구경했다. 특실은 생각 이상으로 아늑했고, 근사했다.
일반실에 갔으면 개별 구매했어야 했을 용품들(티슈, 슬리퍼, 보호자 담요, 베개 등)도 간호사가 모조리 가져다주셨기에 더 필요한 것은 없어 보였다.
비용에 다 포함된 거겠지만 공짜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중 슬리퍼가 유난히 고급스럽다 생각했다.
'일반실로 옮길 때 이 슬리퍼도 가져가도 되는 건지?' 궁금했지만 차마 간호사께 물어보진 못했다.
여느 부부가 비슷하겠지만 우리 부부도 애들이 생긴 후부터 둘 만의 시간이 없었다.
늘 회사와 애들에 치여 살았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 둘 만의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시선으로 병실 밖 창밖을 바라봤다.
특실 통창으로 보이는 야경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우리 둘은 한참을 넋 놓고 바라봤던 것 같다.
아내의 환자복만 아니라면 여행지 호텔에 왔다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이것이 정녕 특실의 힘, 돈의 힘인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