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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Jul 08. 2024

무서운 말 "그냥 하는 거죠!"

나도 이제 '그냥 하는' 남자이고 싶습니다.

기자가 물었다. "힘들 때 무슨 생각을 하세요?" 김연아 선수가 대답했다. "그냥 하는 거죠


이 인터뷰가 한동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스포츠선수, 연예인 가십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내 기억에도 남을 정도로.


요즘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침마다 달리기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이 짓도 어느덧 3주를 향해 가고 있다. 이제는 알람을 맞춰놓지 않고도 6시 언저리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최종 목적은 '아침마다 달리기 하는 습관 들이기'인데 토대가 되는 '아침에 눈뜨기'는 제법 잘 이행되고 있는 편이다.


눈을 뜨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습관이 잡힌 것 같지만 항상 그 이후가 문제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면 대부분은 '조금 모자란 6시'거나 '살짝 넘어가버린 6시'다. 10분 남짓의 오차범위인데도 5시 55분과 6시 5분은 마음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딱히 6시에 눈을 뜨기로 하는 기준을 세운 적은 없다. 기준을 세웠다면 알람을 맞추고 그 시간에 일어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알람을 맞추지 않은 이유는 뭘까? 사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세운 목적이 불분명하고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달리기 하는 습관을 들인다"는 목적에는 일주일에 몇 번을 달릴 것이지, 몇 시부터 달릴 것인지, 몇 분이나 달릴 것인지 등 세부 계획이 설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습관을 만들 의지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까지 꾸역꾸역 눈을 뜨고 달리러 나가는 것을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병'에 걸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다는 핑계로 촘촘한 계획을 짜지 않고 있다. 가끔은 술을 마실수도 있고, 컨디션이 몹시 안 좋은 날도 찾아올 것이고, 특별한 일이 없더라도 어쩐지 늦잠이 자고 싶은 날도 있을 수 있다는 핑곗거리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다. 약한 변명거리지만 놓기가 힘들다. 


이런 연유로 쥐고 있는 핑곗거리는 아침마다 갈등을 불러온다. 눈을 뜨고 본 시계가 6시 전이면 비교적 쉽게 일어날 동기가 생긴다. 하지만 문제는 6시가 조금 지나서 눈을 떴을 때 발생한다. 이때는 의외로 마음에서 큰 동요가 일어난다. '아 6시가 넘었네. 지금 옷을 챙겨 입고 가면 평소만큼 못 달리겠네? 스트레칭 건너뛸까? 음. 몸을 풀지 않으면 부상이 올 지도 모르는데..?" 별 희한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물 밀듯이 밀려온다. 거기서 조금만 방심하면 "오늘 쉴까? 쉬면 한 시간은 더 잘 텐데. 그럼 개운하게 출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밀려버린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뜨고 확인했을 때 휴대폰 시계는 6시 8분을 화면에 찍어 놓고 있었다. 시간을 보자마자 복잡한 생각들이 순식간에 뒤엉키고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이유"들이 생각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결승 테이프를 통과해버린다. 좀 더 자기로 결정한다. 찝찝한 패배감이 남긴 하지만 다시 눈을 감는다. 여전히 눈꺼풀은 무겁고 몸도 묵직하다. 옳은 선택을 했다며 나를 위로한다. '푹 자고 개운한 상태로 출근준비를 하자'며 눈을 감아보는데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쉽게 잠이 드는 것 같지가 않다.


"그냥 하는 거죠!"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가 갑자기 떠오른다. 왜 생각난 건지 모르겠다. 핑곗거리에 추월당했던 의지들이 뒤늦게 쫓아와 결승테이프 너머에서 속도를 내는 것 같다. 그저 '그냥 하는 거죠'가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다. 찝찝하게.


찝찝함을 견딜 수 없다. "그냥 하는 거죠"가 마음 편히 잘 수 없을 정도로 머리를 치고 들어와 버렸다. 고민 끝에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본다. 한쪽 눈꺼풀은 아직 반 밖에 올라오지 않은 채로 몸을 뒤적거려 이불을 걷어찬다. 그놈의 '그냥 하는 거죠가 뭐길래' 하는 불평이 내 몸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꾸. 역. 꾸. 역. 일어나기에 성공했다. 주. 섬. 주. 섬. 옷을 챙겨 입는다. 그래도 행동은 빠릿빠릿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피곤한데 운동하러 가는 게 맞나? 싶은 의심이 여전히 내 몸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다.


주방으로 가서 정수기로 냉수 한잔을 내려 마시고 나니, 희미했던 정신이 그나마 또렷해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와! 이겨냈군. 이제 힘차게 달리러 가보자 뚜벅뚜벅" 이 단계는 전혀 아니고  덮였던 의심이 살짝 걷어지는 느낌이 들뿐이다.


어쨌든 밖으로 나왔다. 영하 5도 날씨의 새벽 공기는 내 정신을 온전히 깨울 수 있을 만큼 차고 상쾌하다. 이제야 나오길 잘했다는 만족감과 게으른 나와의 사투에서 이겼다는 승리감이 뇌신경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것 같다. 걸음을 딛을수록 더 경쾌해지는 기분을 안고 저벅저벅 헬스장을 향해 걷는다.


침대 위에서 러닝머신을 밟는 것까지의 여정은 무사히 완주했다. 러닝머신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일종의 승리감(?) 위를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달리면서 침대 속에서 떠올랐던 김연아 선수의 "그냥 하는 거죠!"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그리 간단하게 대답하기까지 얼마나 숱한 시간을 자신과 씨름했을지 짐작해 본다. 그리고 이 말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말인지, 그 인터뷰가 왜 크게 주목받았는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아가, 나도 언젠간 "그냥 하는 거죠~"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의 목적을 달성해 나간다.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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