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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Jul 08. 2024

게임"도" 하고 싶은 거예요!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익숙하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 띠띠띠띠~ 촤르르륵~


"다녀오셨어요?" 태주, 태우가 잔뜩 힘들어간 목소리로 떠든다.  뭔가 심상치가 않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과하게 우렁차다.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서자 태주는 소파에서 책을 들고 있고, 태우는 자기 방에서 책을 들고 나오고 있다. 그 모습이 여간 어색하지 않다. 비유가 맞을지 모르겠으나 방금 전까지 먼지 휘날리던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이 일시에 작업을 멈추자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다. 


이 녀석들은 조금 전까지 뭔가를 하다가 아빠가 들어오는 소리에 후다닥 정리하고 책 읽고 있는 척하는 게 확실하다.


아무것도 못 느낀 척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유도신문을 해볼 요량으로 나지막이 얘들을 불렀다. 

"아빠는 다 알고 있단다. 방금 전까지 뭐 했는지 누가 먼저 솔직하게 말할래?"


둘은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죄송해요~ 게임했어요~"라고 고개를 숙이고 고백한다. (우리 집 규칙상 아이들은 주말에만 한 시간씩 게임 시간을 허용한 상태다.) 


아직 유도신문이 먹힌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이 순간 느껴지며 웃음이 날 뻔했지만 속내를 감추고 근엄한 얼굴로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너희들 그렇게 게임이 좋으면 학원 다 그만두고 하교 후엔 집에서 게임만 할 수 있도록 아빠가 게임방처럼 세팅해 줄게. 매일 게임만 하게 해 줄 수 있어. 대신 눈이 나빠지고 뇌가 굳고 학습 능력이 저하되는 부분은 너희들이 감수해야 해. 그렇게 해줄까?"


첫째 태주가 곧장 대답한다. "아니요. 그건 싫어요!" 


나는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우린 합의 하에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정해뒀고, 너희는 그걸 어기고 몰래 게임을 할 정도로 게임이 좋은데 왜 싫어? "라고 되물었다.


"아빠, 저는 게임이 좋긴 하지만 게임하고 싶은 게 아니라 게임 하고 싶은 거예요. 게임이 좋다고 게임 하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태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순간 나는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다. 음 무슨 말로 받아쳐야 할까? 하다가 "해야 할 일 다 미뤄두고(수영 가는 날인데 게임에 빠져서 심지어 수영도 안감) 엄마 아빠 몰래 게임한 건 게임 하고 싶다는 의미 아냐? 할 일 다 하고 규칙 다 지킨 후에 게임하면 게임 하고 싶은 거라고 이해해 줄 수 있는데 그게 아닌 건 게임 하겠다는 걸로 보이는데?"라며 꼬투리를 잡아 밀어붙였다. 


수영 안 간 것에는 방어가 힘들었는지 태주는 풀 죽은 목소리로 "네.. 죄송해요. 근데 진짜 게임 하고 싶지는 않아요. 게임 하고 싶은 거지..."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자기 생각을 끝까지 내비쳤다. 


애들 저녁식사도 챙겨야 했기에 앞으로는 몰래 게임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받는 것으로 잔소리는 그쯤에서 접어두고 각자 할 일을 찾아 나는 주방으로, 애들은 공부방으로 흩어졌다.


저녁준비를 하는데 태주 말이 계속 맴돌았다. '게임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게임 하고 싶은 거라고요'

맞는 말이다. 마흔이 넘은 나도 아직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저 나이대 아이들은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규칙을 어겼다고 극단적으로 앞으로 다른 거 아무것도 하지 말고 게임 하는 걸 선택하라고 강요한(?) 내 억지에 승주는 정확히 일침을 가한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민망해졌다. 태주 답에 공감이 되었으면서도 수영 안 간 꼬투리 잡아 억지를 끝까지 밀어붙인 것 또한 민망한 일이었다.


식사 때 애들은 언제 혼났냐는 듯 두 놈이서 깔깔거리며 밥을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씩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 덜컥 겁도 났다. 초등학생인데도 이리 예리하게 정곡을 찌르는데 좀 더 크면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겠다.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히며 겪고 있다는 사실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가득해지는 저녁.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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