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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Jul 08. 2024

건국전쟁


두 해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딱히 영화에 취미가 없는 나는 가족이나 친구의 파트너로서만 가끔 극장을 방문한다. 그런 나도 이번엔 [건국전쟁]이란 영화를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영화관을 찾았다.


요 며칠 인터넷은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공(功)을 집중적으로 다룬 [건국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시끌시끌했다. 가수 나얼이 이 영화를 봤다고 올린 SNS에 좌파 네티즌들이 해당 게시물에 악플 테러를 가해서 결국 해당 게시물을 내렸다는 사실이 뉴스 메인 자락을 차지한데 이어 보수당 '국민의 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거나 한국사 일타강사인 전한길 씨가 이 영화의 평을 냈다는 소식들도 연달아 보도됐다.


이 영화가 이렇게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우파의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최초의 영화라는 것이 하나의 이유일 것이요, 몇몇 유명인들이 매스컴에 공개적으로 영화 추천을 해버린 것이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 홍보의 일등공신은 극성스레 영화를 비판한 좌파 지지세력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이 영화를 언급한 인사들을 향해 도를 넘는 비난과 과격한 악플을 쏟아냈고, 이 사실은 그대로 뉴스화되었다. 이는 정치적 이슈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했고, 호기심들이 하나 둘 모여 다큐멘터리 영화답지 않은 누적 관객 수를 쌓아 올렸다. 현재 71만이라는 관객수에 나 역시 호기심 하나를 보탰다.


영화는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었다. 오도되었거나 폄훼된 이승만 업적을 바로 잡기 위해 애쓰는 단체 소속의 몇 사람 인터뷰에 상당 시간을 할애하고 인터뷰 사이사이에 확보한 증거 자료들을 채우는 식의 구성이다.

가령, 3.15 대통령 부정선거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가 아닌 부통령 선거에서 일어난 부정이라고 오도된 사실을 교정하고, 6.25 남침 시 이승만이 한강다리를 끊어버려 피난민 이동을 막았다는 왜곡에 대해서는 끊어진 한강다리 아래 보행교가 있어 시민들의 이동은 원활했다고 해명하는 식이다. 이 외에도 농지개혁은 역사적 치적으로 평가받아도 모자람이 없다는 근거를 설명하고, 이승만이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70년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며 그의 업적을 조명한다. 이 외에도 여러 측면에서 이승만의 삶을 소개하나 일일이 다 쓰기엔 따분할 듯하여 이 정도로 갈음한다. 앞선 이야기만으로도 영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제작되었는지는 대강 짐작하리라 믿는다.


개인적인 평을 밝히자면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임을 감안하더라도 투박해 보인다. 이승만을 미화시킬 목적의 스토리텔링이나 업적을 부풀리기 위한 자극적인 대사나 장면은 없다. 친일파, 민족반역자, 독재자 이미지를 덮어쓴 이승만의 실체가 바로 잡히길 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담담하게 보일 뿐이다. 때문에 아무리 감정을 이입하고 본 다한 들 이 영화에서 큰 재미나 감동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1시간 40분 러닝타임이 또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손이 가는 슴슴한 집밥 같은 뉘앙스로 영화는 전개된다.


영화는 이승만이라는 하나의 주제로만 시종일관 이야기 하기에 그의 업적을 세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없으나 내 부족한 지식과 정보로는 그의 공과(功過)를 올바르게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승만 업적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뒤로 물리고 공과(功過)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세상에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칭송해 마다하지 않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같은 위인도 저마다의 과(過)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대체로 과(過)를 무게 있게 전하지 않는다. 과(過)를 덮을 정도로 공(功)이 커서이기도 하지만 굳이 과(過)를 드러내어 역사를 읽을 후대의 자긍심을 앗아가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대의 인물에 대해서는 사정이 좀 달라진다. 일부 매체나 세력은 근대 인물들의 공(功)은 뚝 떼어낸 채 과(過)만을 집중적으로 비춘다. 이 같이 행위 하는 이들에게는 나름의 정치적 목적과 셈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는 굳이 과(過)만 부풀려 전파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들은 바쁘게 살아가는 다수의 대중이 그들의 숨겨진 셈법을 따져 물을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자극적인 언어로 역사의 인물을 얼룩 지운다.


때로는 이 영화처럼 얼룩진 역사적 인물의 공을 재조명해보려 시도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공(功)과 과(過)를 균형 있게 보기 위함이다.'는 뻔한 물타기성 말에 대부분 묻혀 버린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라는.


개인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긴 하겠지만 세계적 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매우 안정적이고 발전된 사회다. 현재가 완성되기까지는 선대들의 무구한 노력과 고귀한 희생이 있었고 그중에는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여럿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의 노고와 업적을 높이 사고 존경을 보내야 한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은 역사를 긍정하는 마음에서부터 싹이 튼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역사 인물의 흠을 들춰내는 행태를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무조건 역사를 미화하자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공(功)과 과(過)를 나눠 보는 것이 때론 필요하기도 하나 그것을 정확히 나눠 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대적 환경에 따라 또는 평가하는 자의 정치적 관점에 따라 공(功)이 과(過)가 될 수도 있고 과(過)가 공(功)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보자는 허울 좋은 말 뒤로 역사의 인물이 폄훼되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어서만은 안된다.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우리 사회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갈등과 부작용이 존재한다. 일부 과격한 자들의 주도로 남녀가 갈라지고, 세대를 나누어 서로를 비판한다. 정치도 좌우 극단의 목소리 높은 무리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소위 갈등 천국이라 불려도 딱히 반박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갈등들이 국민 대다수의 심정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중간에 있는 대부분 국민들은 갈라진 양 끝단에서 매체에 큰 목소리로 떠드는 과격한 자들에게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갈수록 선명해지는 갈등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과(過)에 치중하며 역사를 흔드는 교육에 있다고 본다. 갈등을 봉합하고 통합으로 가기 위해서는(완전한 통합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아니 되지만) 국민들이 우리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적 인식은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성장하고 이는 통합의 기틀이 될 수 있다. 자유의 가치를 제1로 여기는 미국 국민들은 혈연이나 세습이 아닌 임기가 정해진 세계 최초의 국가 원수라는 이유로 조지워싱턴을 건국의 아버지라 칭하며 높여 존경한다. 조지워싱턴에게도 분명 과(過)가 있겠지만 그들은 과(過)에 주목하지 않는다. 자유의 가치를 세운 그의 공(功)을 조명하고 그의 정신을 끊임없이 교육하며 통합의 힘을 기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미국과는 완연히 다르다. 건국의 아버지라는 존경은 둘째치고 친일파, 독재자, 반역자로 우리 역사의 뿌리를 한없이 오염시켰다. 이승만도 조지워싱턴처럼 대한민국에 첫 번째 자유를 선물한 건국 대통령임에도 그 공(功)에 대한 흔적은 너무나 희미하다.


나는 우리나라가 정신적 통합을 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인물의 과(過)만 들추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상 정확한 평가도 불가능해 보이는 공과(功過)를 제대로 살피자는 말 또한 잠시 묻어뒀으면 한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흠을 잡기보다 긍정적으로 교육하여 민족적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다수의 국민들이 역사학자처럼 역사 인물들 공과(功過)를 지엽적으로 나누며 논쟁하는 것은 국가 발전에 하등 도움되지 않는다. 따라서 요즘 같이 혼란한 갈등의 시대에는 우리 모두 긍정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역사적 인물의 공(功)에만 집중했으면 좋겠다.





2024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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