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생존기
이 글은 직장생활의 애환을 겪는 많은 독자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드리는 글이 아닌, 스스로 겪고 있는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자그마한 위로이자,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그는 술을 좋아한다. 365일 중 360일은 술을 마신다고 자부했던 게 처음에는 믿기 힘든 허풍 같았지만, 그는 본인이 내뱉은 그 말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몸소 실천했다. '실행을 실행하는 것'을 평소 강조하는 조 상무는 매일 같이 5시면 술 마시는 것의 실행을 절대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 멤버에는 거의 항상 이 팀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2월 중순을 지나가는 시점임에도 『사업부장-기획팀장 세트』의 술자리는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었고,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민 사원은 그 술자리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잡무를 처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차 과장님, 제가 잘 몰라서 문의드릴 게 있는데요.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네, 시간 괜찮아요. 요새 두 분 이것저것 비용 처리하느라 많이 바쁘죠?"
"네, 다른 건 좀 익숙해졌는데 저녁 술자리 끝날 때마다 대리기사를 불러서 보내드리는 게 점점 힘들어져서요."
"대리기사를 불러서 보내드려요? 거기 이 팀장님도 계실 텐데 거기서 직접 부르시는 게 아니라요?"
"네, 대부분 술자리 끝날 때 맞춰서 대리기사를 미리 배정받아 보내드리곤 하는데, 그쪽 대리업체 사장님이 더 이상 맞춰주기 힘들다고 하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드리려고 했거든요."
임원들은 업무상 술자리가 많아 별도의 대리업체를 섭외해 전문 대리기사분들을 배정하고 있었고, 대부분 전문적인 기사분들이어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총무팀을 통해 얼핏 들어 알고 있었다. 일반 대리기사 콜에 비해 단가도 2배 수준으로 높고, 고정적인 물량이 확보되어서 대리기사들의 선호도도 높은 편이었다. 그런데도 대리기사 업체 사장님이 더 이상 맞춰 주기 힘들겠다고 하다니 이건 무슨 의미일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더 이상 맞춰주기 힘들겠다는 이유가 뭐래요? 보통은 그런 경우가 없을 텐데요."
"대리기사분들 대기 시간이 너무 길게 발생해서, 기사분들이 콜 배정을 안 받으려고 하신대요.
9시쯤 끝날 거 같다고 해서 보내드리면 갑자기 10시, 11시까지 술자리가 길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기사분들이 그렇게 대기하는 건 금전적인 손실이 커서 못하겠다고 하시네요."
"그냥 끝날 때쯤 현장에서 부르시면 안 되나요? 이 팀장님께는 말씀드려 봤어요?"
"모든 술자리에 이 팀장님이 같이 계신 것도 아니고, 술자리가 끝날 때 맞춰서 차량과 기사분이 와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시는데 솔직히 매번 그렇게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요."
임원들 의전이야 성향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지만 상무급 임원에게 이 정도 의전을 한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용 기사가 없는 전무급 이하 임원들은 술자리가 끝나면 본인이 직접 대리기사를 부르는 게 대부분인데 대리기사를 미리 불러 근처에 차량과 대기를 시키다니, 들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얼마나 갑질을 해댔으면 대리기사분들이 콜을 못 받겠다고 했을까 싶었다. 정 사원은 매일 술자리 대리기사 배차 문제로 받지 않아도 될 업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팀장님도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어요? 제가 대신 말씀드려 볼까요? 이건 민 사원이 스트레스 받아가며 대리기사분들 배차하고 할 문제가 아닌 거 같은데."
"가능하시다면 대신 말씀 좀 드려주시겠어요? 대리업체에서는 더 이상 콜 못 받겠다고 해서 이걸 업체를 바꿀 수 있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 저도 좀 알아볼게요"
"그래요, 팀장님께 일단 말씀드리고 그래도 계속 기사분들 미리 배정해달라고 하면 이건 총무팀에 지원을 한번 요청해봐야겠네요"
큰 기대를 하고 이 팀장에게 문의한 건 아니었지만, 돌아온 답변은 더 가관이었다. 본인도 1월 초 동석한 술자리에서 대리기사와 차량이 미리 안 와있었다고 10분 넘게 면박을 당한 적이 있었고, 그 뒤로는 비서를 통해 미리 대리기사를 배정받아 차량과 함께 대기시킨다는 것이었다. 조 상무는 본인이 윗분들에게 그렇게 의전을 해왔으니, 응당 본인도 그렇게 의전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술자리에서 공공연히 떠들고 다닌다는 걸 보면 그가 바뀔리는 없었다.
결국 우리가 생각한 방법은 총무팀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몇 번의 읍소와 실랑이 끝에 조 상무를 전담할 별도의 대리기사분을 지정받을 수 있었고, 이는 우리 팀과 총무팀만 아는 비밀이 되었다. 차라리 빨리 진급을 해서 전용 기사분을 배정받는 게 비용도 싸고 편하겠다고 다들 넋두리를 했다.
그는 그렇게 대리기사 업계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음에도 전용 대리기사분을 1년 남짓 배정받아 이용했고, 여기저기 눈초리와 구설수에 오른 뒤에야 결국 회사 내 전용 기사를 배정받았다. 물론 진급은 하지 못했으니, 상무급임에도 전용 기사를 배정받은 최조의 인물이 되었다. 뒷말이 무성했지만, 전용 기사 배정으로 인해 우리 팀과 총무팀은 술자리마다 발생하는 대리기사 배정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한 사람만을 위한 부당한 편의였지만, 그로 인해 팀원 다수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런 것쯤 그때는 모르는 척 눈 감을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Photo by Vladimir Proskurovskiy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