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가 타는 (화물)엘리베이터.

(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생존기

by 흔들의자
이 글은 직장생활의 애환을 겪는 많은 독자분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드리는 글이 아닌, 스스로 겪고 있는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자그마한 위로이자,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은 모두 허구입니다)


1. 회사에는 중앙 엘리베이터 홀 내 총 6대의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이다. 본사에 근무하는 약 400여 명의 임직원들이 6대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각자의 사무실로 이동을 하다 보니,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붐비기 마련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혹은 그 안에서 종종 임원분들이나 CEO를 만나 한껏 불편하게 이동하는 경우도 발생을 한다.


2. 20년 1월 2일 조 상무가 본사로 공식 출근을 한 날을 제외하고는 이 중앙 엘리베이터에서 그의 모습을 본 이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이 중앙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 그가 걸어 다닐까? 싶지만, 누구보다 체면을 중시하고 육체적인 노동을 싫어하는 그이기에 절대 그럴리는 없다는 걸 금방 유추할 수 있다. 그가 건물 외벽을 타고 다니든 계단을 타고 뛰어다니든 사실 나랑은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어느 날 문득 호기심이 들어 유 차장님과 과연 무엇을 타고 다니는지 파고들어 보았다.


3. 총무팀 친한 후배에게 수소문한 결과, 건물 내 각 층에는 비상계단 통로와는 달리 출입이 통제된 구역이 하나 더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통제구역 안쪽에는 임원들만 이용이 가능한 임원 엘리베이터가 별도로 1대 비치되어 있었다. 오피스 빌딩 보안팀에게 출입 승인을 받은 임원들만 해당 엘리베이터 이용이 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흡사 계급사회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직급에 따라 타고 다니는 엘리베이터를 구분하다니. 이 건물에 모여있는 다른 계열사 임원들까지 합치면 그래도 꽤 많은 인원이 타고 다닐 텐데, 1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는 게 더 느릴 수도 있겠구나 싶어 그 뒤로는 그냥 신경을 끄고 지냈다. '역시 조 상무는 조 상무답다' 생각하며 그 주제는 잊어버렸었다.


4. 그러다 이 엘리베이터 주제가 다시 떠오른 건 4월 초 각 임원 비서들에게 온 공지 메일을 보았을 때였다. 각 계열사 임원들은 부사장급 이상만 임원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있고, 그 이하 직급은 출입 권한을 회수하겠으니 일반 엘리베이터 이용을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발단은 상무 진급자가 늘어나며 임원 엘리베이터 이용인원이 늘어나 대기 및 이동시간이 길어지자, 몇몇 성미 급한 고위급 임원들이 컴플레인을 했고, 결국 직급으로 제한을 두게 됐다는 것이다. 같은 임원 안에서도 급 나누기가 이루어지다니, 조금 우습기도 했고, 체면을 중시하는 조 상무가 드디어 중앙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가 싶어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5. 그러나 그는 이후에도 중앙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았다. 설마 우리 사업부가 위치한 30층을 걸어 다닐 일은 없고, 대체 뭘 타고 다니는 것인지 궁금함이 생긴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답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어김없이 『사업부장-기획팀장 세트』는 그날도 5시 땡 하자마자 술자리 이동을 위해 빠르게 퇴근했고, 그들이 이동하는 차량에 고객 선물을 싣기 위해 나 역시 짐을 들고 그들 뒤를 따랐다.


6. 우리가 들어간 곳은 출입 금지 구역 옆에 위치한 비상계단 구역이었다. 설마 이 인간들이 30층을 걸어내려 가는 건가 싶어 당황하는 찰나, 조 상무는 자연스럽게 출입구 안쪽에 위치한 화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이 팀장과 아무렇지 않게 탑승하고는 나에게도 얼른 타라고 손짓을 했다. 그렇다. 그는 임직원들과 뒤섞여 일반 엘리베이터를 타느니, 그냥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그를 중앙 엘리베이터 홀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그날 지하 주차장까지 회사 내 청소 도구, 각종 비품, 택배 등과 함께 이동을 했다. 30층부터 거의 매층별로 사람이나 물건이 들고 내렸기에 지하 2층 주차장까지 내려오는데 10분은 족히 걸렸다. 그날 조 상무의 차 트렁크에 짐을 실으며 '나는 도저히 이 사람의 사고를 이해할 수 없겠구나'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사고를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 회사 아니, 사회에서 만나는 부류 중 가장 무서운 부류라는 걸 시간이 갈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훗날,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이제 더 이상 그 건물의 중앙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Memo #2》

그가 소시오패스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은 화투 밑장 빼기도 아닌, 보고서 유첨 빼기 사건이었다. 자신이 돋보이고자, CEO를 포함한 경영진들이 보는 최종 자료에도 그는 중요한 내용들을 일부러 삭제했다. 그리고 본인만이 아는 그 내용을 갖고 본인이 가장 돋보이는 타이밍에 적절히 활용했다.


대학시절 과선배들로부터 내려온 시험 족보를 독점해 전공 수업 점수를 잘 받았던 얌체 같은 친구들을 보긴 했지만, 회사 내에서 보았던 조 상무의 처세는 그것과는 스케일도 달랐고 활용방식도 달랐다. 결국 대부분의 보고 순간에 그는 가장 빛났지만, 그걸 준비했던 우리들은 그 빛 아래 가장 어두운 곳에 있어야 했다.


소시오패스는 본인이 불편해지는 순간을 못 견뎌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임직원들이 평소 많이 드나드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무대에 서면 누구보다 뛰어난 리더 인척 연기했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불편한 환경에 놓이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회사 내 불편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끔 화물 엘리베이터 이용만을 고집했다. 결국 그가 불편하고, 그를 못 견뎌했던 많은 인원들이 회사와 그를 떠나갔지만, 여전히 그는 불편함이 없이 지낸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Photo by Andrea De Santi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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