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장

-소월삼대목 13-

by 김병주

누구나 뜨거운 것이 필요하다

절절 끓는 방바닥이든

뚝배기에 펄펄 끓는 국물이든

담지 못하고 퀄퀄 터져나오는 목소리든


식은 저녁, 밥 없는 집

혼자를 위하는 일은 그만두고 없앤 지 오래

언제까지나 벅적거릴 거리

등받이는 없어도, 앉을 자리는 있는 거리로 들어가면


부엌데기 일하며 너무 많이 먹어온 노인네들 재차 먹이던 시절

조리원 아주머니는 많은 입을 먹이기엔 튀기고 끓이는 것이 제일이라 말씀했다

생각해보면 참 좋은 겨울 레시피이기도 하지

켜켜이 기름 냄새 입은 늙은 여자들, 국숫집은 좀 더 들어가야 한다


이젠 밥 하나 팔아먹으려 속없는 소리, 모르는 소리도 내뱉고 볼 시절

술꾼은 줄고, 구경꾼은 늘었다

(야경꾼은 결코 아니다, 헷갈리지 말길)

앉으라 앉으라 호객하던 늙다리들, 잘되는 집만 가는 손님 뒤로 나직이 쌍욕을 뱉고

욕 뱉은 바로 그 집 앞으로, 늘 그렇듯, 을숙도 갈매기마냥 주저앉는다


자리가 달궈지면 그보다 더 달궈진 저녁거리가 나온다

녹두전에서 나온 김이 입안으로 옮아간다

같이 내어준 초간장 염기(鹽氣)가 입술로 배아든다

장 바깥에선 사람들 오명가명 웃풍을 몰고


맞은편에서 미친 노인 하나 중얼대며, 소리지르며 걸어온다

다리보다도 말을, 말보다도 생각을 절어대는

그의 입에서 김이 더욱 내뿜어진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놀이가 시작되고


많은 얼굴이 닮았다, 그를

유학 시절 위트레흐트에서 마주친 신포 태생 한국계 부랑자는 대마초를 태우며 “나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연신 되뇌였고

(그는 길에서 다시 마주칠 때마다 나를 못 알아봤다)

어릴 적 집 앞에 살던 알코올중독 할아범은 사람 말도 못 하고 동네를 배회할 뿐이었다

(그가 목을 맨 아침 1층 창가를 여고생들은 재잘거리며 지나쳤다)

사람은 자기 안이 아닌 바깥에서, 길을 잃는 게 아니라 잊기로 하는 법


미친 노인이 아기가 탄 유모차를 흔들다 외국인에게 말을 건다

답은 돌아오지 않고, 호객꾼들 들어가 경찰을 부를 준비를 한다

내쫓기는 그 눈, 웃고 있다, 허리춤에 가위가 하나

이윽고 노인이 끓는 기름에 손을 담갔다 빼며 소리지른다

튀김 솥에 잠깐 파도가 일고, 매대 앞뒤 사람들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루 장사도 식사도 망친 사람들의 자리에 온기가 아직 남았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제일 먼저 마을에 불을 지를지 궁금한 생각

일어나 걸어간다, 그가 온몸으로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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