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 동대문

-소월삼대목 14-

by 김병주

나무, 라기에도 부족한 가지 밑동, 하얗게 봉해놓았다

그 위로 추접스런 감이 득시글거린다

길 잘못 들어 함부로 나온 바퀴벌레

발로 짓뭉갤 때 알 까듯

언 땅에 보리싹 짓밟듯


기침하던 시인은 죽었다, 새벽에

잘 보면 그의 유작은 단수형으로 쓰였다

그의 집 반대편으로 간다, 오후에

신발 자국만 수천수만의 접미사를 가진다

내던져지고 짓이겨지고 으스러지고 부서뜨려지는 것들은 살아있다, 하필 살아

있어서 그렇다, 아무도 원한 바 없는데


자살할 가치도 없는 삶, 이라고 네가 언젠가 말했던가


너무 익은 감이 제풀에 무너진다

무너지기 합당할 정도로 익었다, 낙과가 스스로 못 이겨 부들댄다

모두 멀리 떨어진다, 그를 제외한 누구도 그를 더 뒤흔들어놓지 못한다

제 몸을 그만두고도 맘 놓고 잠들지 못하는

눈 뜨고 보기 어려워 눈을 감아도 비치는


아무 바람도 덧붙이고 싶지 않다, 말은

무성하다가도 흩어지고 마는 것

무의미보다도 의미가 없다, 그나마 눈여겨볼 만한 것들

중간에 뚝뚝 끊긴 채 끝이다

곧이어 청소차가 오후와 새벽 사이 널브러진 것들을 담아갈 것이다

닮아갈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에 남긴다

감, 은 힘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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