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소월삼대목 32-

by 김병주

오늘 제게 구멍이 하나 났습니다

(별 뜻은 없었을 것입니다만)

멀쩡히 살아있는 몸뚱이에서

(적어도 그렇게 믿어보렵니다)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피는커녕 땀도 안 나오고)

계속 드는 웃풍이 시려워서

(바람 손에 큰 자식도 아니었기에)

대충 테이프로 때워두었습니다

(장작으로 막으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심한 듯한

(사실 예상할 수도 없었지만)

구멍이 테이프를 뜯어내기에

(사자처럼 저 혼자 뜯어 발겨)

그만 쳐다보라고 어르고 겁을 줘도

(깊이를 알기 힘든 맑은 눈이)

구경난 듯 가만히 저를 쳐다보는데

(시선을 피하면서도 저는 흘긋흘긋)

갑자기 적잖이 혐오스러워져

(마치 내기에 진 것 마냥)

괜히 분통을 터뜨리자 질렸다는 듯

(제 어떤 것에 질렸는지는 신경 쓰기 싫습니다만)

저를 버리고 떠났습니다

(생각보다는 금방 미적미적 물러갔습니다)

잘됐다고 마음을 놓으려는데

(왜)

구멍이 떠나간 그 자리에서 바로

(흔들어 딴 콜라보다 세차게)

숨이 빠져나오고 피가 치솟고

(생판 본 적도 없는 가열찬 기세로)

살점까지 빨려나갔습니다

(It’s a Twister! It’s a Twister!)

아무리 꾹 막아도 막을 수가 없어

(그동안 나한테 왜 그랬어! 왜!)

이러다 잿더미로도 못 남을까봐

(다시는 무시하지 말고 똑바로 봐!)

…이제는

(혼자서)

멀어져가는 구멍을 붙잡으려 쫓아가는 동안

(모든 결말이 그렇듯이)

바람이 구멍을 통해 시리도록 세차게 불었습니다


(그리고 너는 결국 또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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