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산에 봄

-소월삼대목 33-

by 김병주

당신 보기 좋으시라고

비탈에도 진달래랑 백목련이랑 자분자분 몸을 풀고 있습니다

아직 큰 나무들이 눈을 끔적끔적하는 동안

둥치의 작은 나무들이 먼저 말을 겁니다

작년의 그 무수한 밤송이들도 이제는 덜 사납게 길이 들고 있습니다

이 산을 찾은 지도 너무 오래라 이런 곳도 있었나 하고 길을 헤맵니다


한나절 걷다 보니 정상으로 가는 발길들 모두 길이었습니다

어느 길은 나무계단을 놓아 나이 든 분들 편히 오가고

어느 길은 까치와 오소리만 남모르게 다닐 수 있게끔 해주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는 버릇대로 오른쪽 길로 향합니다


고개를 들고 얼기설기 가지들을 보며 다닙니다

얼기설기 가지들 사이로 비치는 구름 없는 하늘 한 점이야말로 우리가 허공이라 부르는 그것입니다

그곳과 이곳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지난해에는 누군가 제가 눈여겨두었던 할미꽃 자리를 없앤 일도 있었습니다

아쉽고 속상한 만큼 솔가지 밑에 돌탑을 쌓았습니다

당신이 오늘은 여기 오시지 못한다 하여

여러 해 전부터 아로새긴 기억 한 장

마찬가지로 같이 쌓던 이 돌탑 위에 얹어놓았습니다

돌탑 옆 산 정상의 정자 아래서

땀을 조금 흘린 어른들은 비로소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습니다

문득

솔 밑마다 진달래가 지천입니다


이제 내려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튀어나온 나무뿌리들을 계단으로 삼는 것은

화단에 개나리들 아래마다 별꽃이 있는 것처럼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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