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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를 아십니까

-소월삼대목 41-

by 김병주

같은 땅을 두 번 밟지 못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모든 발걸음이

도망이다, 산발했다가 물을 적셔 가다듬은

붓끝을 닮은 삭정이로

모래사장 뒤덮는 파도에게 먹일 그림을

그리고


했던말또하고했던말또하고했던 말

또 하

미루는 일마저 미루는 뒷모습

얼룩진 개구멍으로 흘러 들어간다

어린 시절도 광대패도 거기

있다, 손대지 않는 곳

들짐승들, 주먹질에 깨진 머리

던져두고, 베개에 눌린 얼굴

던져두면, 먼저 가있던 뭉뚝하고 서툰 발바닥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잘못했어요죄송해요다시는안그럴게요한번만봐주세요제발

부탁

이에


검정 봉지에 모은 쓰레기가 낙하하는 아침 주차장

살인범과 강간범, 취한 부랑자도

출소한 삼촌에게 몸을 맡긴 아이도

아래턱부터 자기 냄새 피해서 달아나는 노인네도

혼자선 못 먹을 밥 먹으로 나온다

숨 한 번 쉴만한 틈 나 있는 서가 사이로

음악 소리 기침 소리 공사장 드릴 소리

방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때려눕혔던 어제가 그냥,

걸으러 나가본다


움직이는 일도 멈춰서는 일도

다 이유는 같다

대록대록 눈길들 더 슬그머니 다가와

손발을 붙들고 엮어, 마치 제 꼬리 문 뱀처럼

줄에 매달고 빙빙 돌리면

원심력으로 어디든 튕겨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아

몸을 더 동그랗게 말아본다, 이질감이

들 정도로, 속도가 점점 붙으면

마음이 편하다, 방안이 바깥보다 무더워지고


절름발이는

사대문밖으로

찔뚝찔뚝

걸어나가는

상상을

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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