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삼대목 57-
체온의 9할도 넘는 날
온몸에 땀으로 사람은 더 진해지는데
도서관 입구는 늘 오르막
무슨 일일까, 오늘 하루 나무로 세운 부스들
얇고 두꺼운 책들이 볕을 쬐는 동안
아이들이, 집과 회사에선 보이지도 않던 아이들이
구름처럼 몰렸다
그 곁에 사람들이, 유모차 탄 아기부터 조부모까지
줄 서서 기다린다
정문 곁, ‘내 안의 용감한 사자’를 찾자는 부스에
발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 옆에 작게 달린 설명
사자, 코끼리, 기린의 가면을 써보잔다
서로 잡아먹지도 쫓기지도 않는 환상 속 풍경
도서관 안팎에도 거리에도
손에는 솜사탕 하나, 얼굴엔 가면 하나 걸친
아이들 덕에 펼쳐진다
맞아, 가면은 어릴 때 쓰는 거야
어릴 때부터 가면을 써버릇해야지
그래야 어른이 되어 무슨 얼굴을 걸칠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법이지
한 번에 가면을 두 개나 쓸 수는 없는 법
비 내리기 전 이 풀밭 위에
멋진 갈기 아래 세상을 둔 사자의 얼굴을 할지
가족과 함께 다니는 법 잊지 않는 코끼리의 얼굴을 할지
웅덩이부터 하늘까지 멀리 내다보는 기린의 얼굴을 할지
마치 돌잡이처럼 고민한다
정작 아이들은 오래 고민 않는데도, 나 혼자
헌데, 내 안에 용감한 사자가 있다니
사자는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 걸까
언제 어디로 들어온 걸까
그런데 나는 사자를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질문이 꼬리를 물다
방향을 살짝 튼다
어느 날 사자 혼자 말도 없이 훌쩍 떠나면 어쩌나
손쓸 수 없는 두려움이 오면 마법사를 찾아갈지도 몰라
그도 아니라면 잠깐 산책간다 하고
가젤의 얼굴을 빌려 쓰고 우리 밖으로 나가버릴지도 몰라
그럼 가젤의 얼굴을 한 사자를
누가 다시 알아볼 수 있을까
가면에도 들지 못한 외로운 그 얼굴을
문득, 코끼리와 기린 가면을 쓴 아이들이
사자 가면의 아이 뒤를 쫓아 뛰어간다
온종일 놀다 시간이 가면
오늘 하루 걸쳤던 얼굴을 내려놓기 아쉬울 테지
그전처럼 읽어내야할 어려운 얼굴 없이
어른들 모습만 눈앞에 남을 테지
짐짓 상상을 해보는 동안
진해진 땀이 흐르고 또 흘러 풀밭에 툭 떨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