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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의 낙원

-소월삼대목 66-

by 김병주

그런 날이 있다

모든 대화는 고통이다

모든 눈맞춤은 불편하다

요일도 날씨도 상관없이

그런 날은 기필코 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는 법을 잊은 비둘기

길바닥과 배를 맞댔다

여기서 더 달라붙을 수 없고

여기서 더 달라질 수 없다

쏟아낸 내장을 깃털과 뼈로 덮으며

파리떼를 불러모으고


입을 맞춘다는 일은

역하기 짝이 없어

귀를 아무리 기울여도

한번 들어간 말 도로 빠져나올 리 없고

그들 눈초리가 두 배로 매섭게

조각칼 들고 덤벼드는데


파리가 몰려들면 뒤이어

개미와 바퀴, 쥐 따위도 몰리는 법

부끄러운 비둘기 위로

산 것들 악착같이 다툰다

오늘치 너의 몸뚱이를 가져야

오늘의 내가 하루만큼 사는 법


이 방향으로 걷겠다 마음먹은 적 없다

오직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터

잊기엔 자국이 깊이 남아

대신 속을 비우고 게우며

진공으로 몰리는 바람처럼 압력을 피해


그에게 주어진 날은 이제 없다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고

어떤 눈길도 주지 않는다

누가 지나가건 말건

사방에 벽을 친다

최후의 수단까지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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