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삼대목 85-
매운 것은 아무래도 당기지 않는 날
젊은 남자 둘이서 하는 국밥집은
마일스 데이비스를 틀어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기름때 한 점 없는 가게엔
소주 대신 정종과 데스페라도
소금 대신 들큰한 간장 소스
하기사 저기 헌재에서 도서관 가는 길목엔
국밥에 고수를, 수육에 라임을 곁들이려 몇 시간씩 줄을 선다니
일일이 놀랄 일도 아니다만
그 많은 국밥집 주인들 언제 저녁을 먹는지 묻고 싶어도
그것만큼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어색한 일
못다 한 이야기를 정리하기도 전에
국밥이 오른다, 쉼 없이 끓는 국물 솥에서 한 국자
파 올린 찬밥과 얇게 썬 고기에 끼얹어
기름지지도 맵지도 않은 국물이
직접 담그지 않은 깍두기를 힘겹게 떠받든다
어느 때고 우리는 고깃국물 앞에 돌아와 앉아
뻑뻑한 살점에 잇자국을 새겨봐야 한다
잇자국이 모여 도읍을 세우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도읍은
다시 따듯한 고깃국물 앞에 무릎을 굽혔으니
결국에는 순대에 내장도 면사리 다데기 정구지도
없어도 그만인 곁가지일 뿐이라고
열리길 거부하는 정종 병뚜껑이 조용히 읊조리는 동안
갈수록 달고 가벼워지는 바깥 밥상이
두 주인과 가방을 내려둔 손님을 두고
혼자 부리나케, 화장실도 안 들르고 충무로역으로 달음질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