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로니아의 점심

-소월삼대목 88-

by 김병주

맨몸으로 다니는 우리야 알 일 없지만

가림막 안쪽에선 중장비도 밥을 먹는다

불도저도 포크레인도 타워크레인도

점심이면 함바집에 조끼 놓고 둘러앉아

육개장에 흙먼지 썩썩 말아 배를 채운다

기계는 눈이 어두워 반찬을 잘 찾지 못하니

숟가락질 한 번에 공가들 허물어져 내리고

젓가락질 한 번에 인부들 하늘로 솟구친다

제아무리 역발산 항우의 후손 밤중에

구중궁궐 담벼락의 돌을 돌려놓아도

생때같은 기계들의 배고픔은 당할 재간 없으니

하려고만 하면 못 할 일이 무엇이랴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법

입을 막고 혀를 감춰 몸을 편히 하는 동안

다투던 뭇사람 온데간데없어 화평하다

그리하여 새로 삶은 수육 한 점 오른 상 주변에

먹을 자리 찾는 바퀴 자국 얽히고설키니

머리 위 천국에서 내려다보면 우습겠지만

현수막 바깥에 사는 우리야 알 수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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