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쟁이 할머니 전상서

-소월삼대목 89-

by 김병주

텃새들의 왕국

구름 하나 가릴 만치 새떼가 돌다가

마당에 돌아온다


그 없이 처음 치르는 김장

김치 소보다 벌건 철문이 하염없이

열려있다


골짜기에 비행기 몇 번 뜨더니

서른도 안 된 남편 다시 못 오게 되어서야

새색시는 전쟁 난 줄 알았다


그는 그동안

농협창고 뒤편 담쟁이만 읽고 있었다

어제보다 새들이 몇 마리나 더 오나

세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산에 물이 마르고 장성한 아들 전주로 나갔다

그는 여전히 밭둑에 마당에

앉아 있었다


수원서 내려온 옆집 장손

고구마밭 작업방석에 앉은 그를 보고

왜 밭 한가운데서 떼를 쓰고 있냐며

의문이다


그 장손 키 뒤집어쓰고 쭈삣거리며 문 두들기니

두둑하니 소금 한 바께쓰 퍼다

별명 지어준 값을 치른다

너털웃음이다


꽃무늬 김장 조끼만 입던 그는 귀가 먹어

오직 옆집 할매 하나하고만

말이 통했다


거기서 더 무슨 말이 듣고 싶었으랴

넘의 집 돌릴 치까지 치르는 김장일

갈수록 엄숙해질 뿐


계절이 무색하게 속을 앓던 그는

추수 즈음 낡은 호미 자루 내려놓고

밭 가운데서 아주 날러가버렸다


매미 허물처럼 벗어놓고 간 세간살이

아궁이에 채 못 들어간 박스

바스라진다


주인 잃은 장독대 오매불망 하늘 보고 선 동안

현관 다라이에 대추가 무척 마르고

달에 한 번 내려오던 맏이 발길

더 뜸해졌다


창고 벽에 지도를 다 그린 담쟁이

담을 넘어 뒷방과 부엌에도 손을 뻗는다

그 손자국도 이내 말라 떨어지고 흰 바람벽에

둥근 지문만 남는다


오늘 창고 옆에서 배추에 소금을 뿌리는 동안

구름도 안 뵈게 새가 무척이나

맴돈다


울음소리도 없이

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냐는 듯이

더 바랄 것도 없다는 듯이


물 마른 산 너머 담쟁이 그늘 바깥으로

부리부리한 눈망울 번득이면서

속으로 속으로만 속 삭이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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