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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의 창

연필은 숙고와 신중함의 또 다른 상징이다.

상사화 꽃잎처럼 혼자서 지핀 화로 마침내 완성한 문장 심장처럼 뜨겁다

by 정유지

쓰다만 사랑고백

지우고 다시 쓰고

상사화 꽃잎처럼

혼자서 지핀 화로

마침내 완성한 문장

심장처럼 뜨겁다

- 정유지 시 「몽당연필」 전문

오늘의 화두는 ‘연필의 미학’입니다.

어렸을 때 사용했던 연필을 다시 잡았습니다. 볼펜, 만연 필, 사인펜 등 각종의 필기도구가 서랍 속에 즐비하게 놓여 있지만, 현장에서 곧바로 지우고 새롭게 작성하는 일을 반복할 수 있는 연필만을 고집하게 되었지요. 장용숙 시인의 시를 소개합니다.


“가슴에 품은 말들을

다 드러내기에

너무 벅차서

끝내 종이를 사랑해버린

그런 이야기”

- 장용숙 시 「연필」 일부


장용숙 시인은 볼펜이나 만연필이 아닌 연필을 사용한다고 해도 결코 자신을 표현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어필하고 있지요. 오히려 가슴에 품은 생각을 동심(童心)으로 회귀하듯 침을 발라가며 정성껏 친구에게 편지를 쓰던 그 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말의 힘을 느끼게 만듭니다.

CEO나 오피니언 리더의 데스크 위에 놓여있는 필기도구 중에 연필이 없는 경우가 드뭅니다. 연필은 숙고와 신중함의 또 다른 상징입니다. 연필이 아닌 필기도구를 사용하다 잘못 기입하면 새롭게 용지를 뽑아 다시 작성하거나, 오기(誤記)로 작성된 글자를 수정액으로 지워야 하는 번거로움을 거치게 됩니다.


연필심에 침을 발라가며 동심의 마음을 전하듯 순수함으로 소통하는 인간관계, 고치고 또 고치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듯 새로운 생각과 변화를 담아내고 생성시키는 인간관계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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