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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읽는 조선왕릉 기행
효릉(孝陵)
by
정유지
Oct 12. 2023
효릉(孝陵)
출처 : 조선왕릉 전문 사진작가 김상일
조선조 제일 효자 임금이 인종일세
여섯 살 시절부터 25년 간 세자 노릇
아쉽게 구 개월 남짓
짧은
치세 남겼네
계모인 문정왕후 독살설
남긴 군왕
길러준 계모의 뜻
어길 수 없는 효심
조광조 신원 회복을
명하면서 떠났네
-정유지-
효릉(孝陵)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산 37-1에 있다.
제12대 인종과 그의 비 인성왕후의 능이다. 인종은 8개월 보름 남짓 왕위에 있다가, 1545년 경복궁 청연루에서 승하하고, 인성왕후는 대비로 32년 더 살다가 선조 10년(1577) 11월 28일 64세로 승하해 왼쪽에 비워놓았던 왕비릉 자리에 안장됐다.
인종은 조선조 제일의 효자 임금이다. 1계비 장경왕후 소생(정비 단경왕후는 후사가 없음)의 중종 즉위 10년 만에 얻은 장남이며 생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자랐지만 지극한 효성을 보인 임금이다.
효자 인종은 부친 중종이 병들자 지극한 병시중을 손수 했고 중종이 승하하자 6일 동안 미음조차 들지 않았다.
5달 동안 곡소리를 그치지 않았고 죽만을 마시고 소금과 간장을 입에 대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나도 늘 빈소를 지켰다.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군국에 관한 정사는 대신들에게 위임했다.
초상 때부터 수척한 것이 극에 이르러 대신들이 “고기를 먹으라.” 권해도 물리쳤다.
어느 날 문안차 인종이 대비전에 들리자 평소와 달리 문정왕후가 웃음으로 반기며 다과를 내놓았다. 난생처음 자신을 환대하는 계모를 보고 기분 좋아, 아무런 의심 없이 다과를 먹었다가 그 후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었다. 이른바 인종의 독살설이다.
9개월도 못 채운 인종의 재위기간, 효성이 지극했던 군왕으로 기억된다. 조광조 신원 회복을 명하면서 세상을 떠난 임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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