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5대 임금이자 연산군 이어 두 번째 폐위 임금인 광해군(재위 1608∼1623)과 그의 비인 문성군부인(文城郡夫人) 유씨의 쌍묘이다.
광해군은 1575년(선조 8) 선조와 공빈 김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조는 정비와 8명의 후궁을 두었는데 정비는 후사가 없었고 공빈은 임해군과 광해군을, 인빈은 의안군, 신성군, 정원군, 의창군 등, 후궁 8명, 14명의 아들을 두고 있었다. 이중 공빈 소생 광해군이 15대 임금이 되고, 인빈 소생 정원군 아들 능양군이 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쫓아내고 16대 임금 인조가 된다. 서손 임금(선조) 서자 아들(광해군)과 서자 손자(인조)가 3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광해군은 즉위 후 선조가 아낀 영창대군을 폐서인시켜 강화도로 보내 ‘증살(蒸殺)’ 즉 방에 불을 때 쪄 죽였고, 인목왕후는 경운궁에 가둬 유폐시켰다. 그리고 결국 동복(同腹)형인 임해군마저 죽여야 했다. 이런 일은 ‘패륜군주’라 불리며 백성들 원성 사기에 충분했고 반정의 명분이 되었다.
‘인조반정’은 서인 일파가 광해군과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을 왕위(인조)에 올린 사건을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실리적 북방외교를 펼치더라도 패륜군주 같은 백성들의 거센 반발을 간과한 것이 가장 큰 몰락의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