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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영릉(寧陵)

by 정유지

영릉(寧陵)

출처 : 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조선조 유일하게 외국 간 군왕 부부

요절한 소현세자 오히려 기회였지

북벌을 주창한 임금

그 구호는 힘찼네


북벌의 성패 떠나 치세는 융성했고

대동법, 화폐단위 개혁을 실시한 왕

두차례 나선 정벌에서

군비확충 빛났네


-정유지-




경기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43 있는 영릉은 제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를 모신 능으로 하나의 산줄기에 곡장을 하나(효종)만 두르고 봉분을 상하2기로 조성한 조선 최초의 동원상하릉이다.


효종의 휘(諱)는 호(淏)이고 자는 정연(靜淵)이며, 호는 죽오(竹梧)다. 비는 우의정 장유의 딸 인선왕후(仁宣王后). 청나라에서 볼모로 많은 고생을 겪다가 8년 만인 1645년 2월에 소현세자가 먼저 돌아왔고, 그는 그대로 청나라에 머무르고 있다가 그해 4월 소현세자가 갑자기 죽자 5월에 돌아와서 9월 27일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소현세자의 죽음에는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1649년 인조가 죽자 창덕궁 인정문(仁政門)에서 즉위했다. 효종 이호(1619~1659)는 많은 사람들이 ‘효종=북벌’이라고 여길 만큼 안보를 중요시한 군왕이었다.




북벌이란 말 그 자체만으로도 호연지기가 강했던 효종의 성정을 알 수 있다. 안보가 뚫리면 전부 다 무너진다는 투철한 의식만은 오늘날 후손인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훈이다. 경제 성장은 안보의 뒷받침 없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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