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릉은 제19대 숙종과 그의 제1계비 인현왕후, 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으로써 세기 봉분이 동원이강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 인원왕후릉은 단릉이다. 따라서 동원이강릉이다.
숙종(肅宗, 1661~1720, 재위 1674~1720)은 자 명보(明譜). 휘 순(焞). 현종의 외아들이다. 1667년(현종 8) 왕세자에 책봉되고, 1674년 조선의 제19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비는 영돈녕부사 김만기의 딸 인경왕후(仁敬王后), 계비는 영돈녕부사 민유중의 딸 인현왕후(仁顯王后), 제2계비는 경은부원군 김주신의 딸 인원왕후(仁元王后). 숙종 때는 붕당정치가 무르익었다. 왕권 강화를 위해 정국을 주도하는 붕당을 자주 교체하는 환국을 단행, 서인과 남인이 번갈이 집권하였다.
붕당(朋黨)이란 조선 중기 이후 특정한 학문적, 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집단을 말한다.
서원과 향악의 보급 확대와 사림 세력의 성장으로 선조 즉위 초 사림이 정국을 주도했으며, 척신 정치 청산을 둘러싸고 사림 간의 갈등인 붕당으로 전환하게 된다.
척신 정치 청산을 둘러싸고, 사림 내 동인(이황, 조식, 서경덕 학문 계승)과 서인(명종 때부터 정치 참여, 척신 정치 청산 소극적, 이이, 성혼의 문인 가담)으로 시작한 붕당이 동인(정여립 모반 사건을 계기)은 남인과 동인으로, 서인(숙종 때, 송시열, 김수항, 경신환국)은 강경파 노론(이이명, 김창집, 조태채, 이건명 등)과 온건파 소론(조태구, 최규서, 최석항 등)으로 바뀌게 된다.
숙종 때, 경신환국, 기사환국, 경술환국의 단계를 거친다.
서인이 남인을 역모로 몰아 경신환국을 일으켰다. 경신환국(1680)은 허적(남인)이 대흥산성의 군인을 통해 역모를 꾸몄다고 서인이 고변하여, 허적 및 윤휴 등을 사형시키고 나머지 남인 세력을 축출한 사건이다.
숙종은 숙원 장씨를 총애하여 1688년 소의로 승격시켰으며, 이듬해 장씨에게 출생한 왕자의 명호를 정하고자 하였다. 서인이 이를 반대(1689)하자 송시열, 김수항 등을 유배하고 왕자의 명호를 정하였으며, 왕비 인현왕후를 폐위, 희빈으로 승격된 장씨를 1690년에 왕비로 책봉하였다. 기사환국이다. 희빈 장씨(남인) 소생 원자를 책봉하고, 남인이 집권하게 된다.
그러나 인현왕후 폐위를 후회하던 왕은 1694년 남인을 추방하고 다시 서인을 등용해 폐비를 복위시킨다. 갑술환국이다. 인현왕후(서인) 복위시켜 서인 세력이 집권하게 된다. 경술환국이다.
장씨를 희빈으로 강등시키고, 1701년 무고죄로 사사(賜死)하였다.
서인은 장희빈의 아들 윤(경종)을 지지한 소론, 숙빈 최씨의 아들 연잉군(영조)을 지지한 노론으로 대립각을 세운다. 숙종 다음에 경종, 그다음에 영조가 왕위를 승계하면서 권력 지형도 역시 자연스럽게 소론에서 노론으로 넘어오게 된다.
왕의 재위기간은 국내적으로 당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였다. 13세 젊은 나이에 국왕이 되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붕당정치를 이용할 수밖에 없던 특수성이 존재한다.
남인을 칠 때 장옥정을 폐위하고, 서인 칠 때 인현왕후 민씨를 폐위한 군왕 숙종, 아울러 숙빈 최씨를 최종 선택해 왕권강화를 모색한 군왕 숙종은 여인들의 사랑을 교묘히 환국정치로 이용한 베테랑이었다.
45년 10개월을 재위하여 조선 역대 임금들 중 영조(51년 7개월)에 이어서 두 번째로 재위기간이 길며, 영조(81세), 태조(72세), 고종(67세), 광해군(67세), 정종(62세)에 이어 여섯 번째로 장수한 왕(60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