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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릉(元陵)

by 정유지

원릉(元陵)

원릉 21).JPG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피바람 임인옥사 살려준 인원왕후

경종이 급서하자 왕좌에 등극했지

붕당의 폐해 속에서

사도세자 죽었네


83세의 최장수왕 52년의 최장 재위

균역법 전격 실시 양역의 부담 덜고

당쟁을 넘은 탕평책(蕩平策)

왕조 보존 최고수


-정유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에 있는 원릉은 제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를 모신 능이다.




숙종 2남으로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 1699년(숙종 25) 6세 때 연잉군이 되고, 1721년 왕세제로 책봉되었다.


1741년에 이조전랑 통청법을 혁파하였다. 안타까운 점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思悼世子) 곧 장헌세자(莊獻世子)를 붕당(朋黨)의 폐해 속에서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일이다.




영조가 탕평책 펼쳤던 근본요인은 계층 간의 소외현상으로 초래된 ‘이인좌의 난’을 통해 파생된다.


만약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남의 권문세족들의 지지를 받았던 이인좌가 당시 실세 군부와 손잡고 난을 일으켰다면, 역사가 새롭게 바뀌었을지 모를 일이다.




영조는 조선조 최장수(83세) 임금이자, 역대 왕 중 최장 재위 기간(52년) 가진 임금으로 기록되었다.


조선 후기의 중흥기 이룬 영조는 붕당(朋黨)의 폐해를 시정하려고 공정한 인재 채용의 원칙 지킨 탕평책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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