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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릉(懿陵)

by 정유지

의릉(懿陵)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숙종의 장자라서 세자로 책봉됐네

무고의 옥 사사된 장희빈 외동아들

생모를 왕비 추존 못한

병약했던 왕일세

노론의 역모사건 격변의 소용돌이

숙청의 신임사화 살육의 공포정치

급서(急逝)한 경종 독살설

이인좌의 난 번졌지


-정유지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의릉(懿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32길(석관동)이 조선 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 능으로 곡장을 두르고 있는 경종릉 아래에 선의왕후능이 모셔 있는 동원상하릉이다.




경종(景宗)은 1688년(숙종 14) 10월 27일 숙종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역관 장경의 딸로 어린 시절 궁궐 들어가 22세에 숙종의 승은을 입은 희빈 장씨이다.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는 인현왕후가 폐출되자 왕후가 되었다가 1701년(숙종 27) 죽은 인현왕후 저주했다는 ‘무고의 옥’ 사건으로 사사되는 일이 있었다. 이때 경종 나이 14세이었다.


1722년 노론이 주도해 경종을 폐출시키려는 역모사건이 소론 목호룡의 고변으로 밝혀지자, 노론의 핵심적인 인물들을 숙청하였다. 이것이 신임사화(辛壬士禍)이다.


이후 소론의 과격파인 김일경 중심의 정권은 노론에 대한 가혹한 탄압 벌여서 그의 재위 4년 동안은 당쟁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이런 정국의 혼란과 비정한 살육의 정치는 경종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1723년 긴급한 일이 있어 왕이 중신을 부를 때 발급하는 명소통부(命召通符)를 개조하였고, 독도(獨島)가 우리 영토임을 밝혀주는 내용을 담은 남구만의 『약천집(藥泉集)』을 간행하였다.




경종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영조가 자신의 후원자인 숙종 계비 인원왕후와 손잡고, 수라에 곶감과 게장을 올려 경종을 죽게 만들었다는 무수한 추측이 난무하였다. 훗날 이인좌의 난이 일어난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인좌의 난은 삼남 지역 많은 권문세족들이 동조했을 만큼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기나긴 치세를 자랑하는 숙종과 영조 사이에서 4년을 재위하였으며 37살의 나이에 병으로 승하(1724)하였다.




아버지인 숙종의 재위 기간 45년과 이복동생인 영조의 52년을 합하면 한 세기에 가까운 97년인데, 이는 조선 왕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아버지 숙종과 이복동생 영조의 재위 기간과 비교하여 경종의 재위 기간은 고작 4년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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