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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건릉(健陵)

by 정유지

건릉(健陵)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역적의 아들인데 살아난 군왕일세

생부인 사도세자 진종으로 추존하고

생부의 존호도 역시

장헌세자 높였네


탕평책 이어받아 왕정을 바로 잡고

인재를 육성하는 규장각 설치했지

북학론 위민(爲民)의 정치

개혁정치 그 중심


-정유지-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 481번길 21에 있는 건릉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와 그의 비 효의왕후 김씨의 합장릉이다.


정조는 장헌(사도)세자, 헌경왕후(혜경궁 홍씨)의 둘째 아들이다.


정조(正祖)의 이름은 산(姦),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다. 영조의 손자다. 아버지는 장헌세자(莊獻世子:思悼世子), 어머니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惠嬪)이다.


1752년 태어나, 1759년(영조35) 8세 때 세손에 책봉되고, 1762년 2월에 좌참찬 김시묵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를 맞아 가례를 치렀다.


이 해 5월에 생부인 사도세자(후일의 장헌세자,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됨)가 뒤주 속 갇혀 죽는 광경을 목격한다. 1764년 2월 영조가 일찍 죽은 맏아들 효장(孝章)세자의 뒤를 이어 종통을 잇게 한다.


정조는 1776년 3월, 영조 승하 6일째 되는 날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했다.


정조는 즉위(재위: 1776~1800)한 후 곧 규장각을 설치, 수만 권 책을 갖추는 한편, 학자를 모아 학문을 연구했다.


규장각 학자들은 정조의 권력과 정책을 뒷받침했고 재위 24년간 탕평책을 실시, 개혁정치의 중심이 됐다.


자유로운 상업 활동을 보장하는 한편으로 서얼과 노비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등 사회전반 걸친 제도 개혁을 꾀했다. 정조는 왕정체제를 강화해 진정한 위민을 실현시키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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