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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릉(景陵)

by 정유지

경릉(景陵)

경릉 24).JPG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최연소 8세 보령 등극한 군왕일세

첫 눈에 반한 여인 운명의 경빈 김씨

낙선재(樂善齋) 함께 한 이년

자신의 삶 살았네


-정유지-



경릉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에 있다.


제24대 헌종(1827~1849, 재위 1834∼1849)과 원비 효현왕후 김씨, 계비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이며, 하나의 곡장 안에 세 기의 봉분 들어선 조선왕릉 유일한 양식이다.




헌종(憲宗)은 휘(諱)가 환(奐), 자는 문응(文應)이고, 호는 원헌(元軒)이며, 익종(翼宗:추존왕)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조만영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 정비는 김조근(金祖根) 딸 효현왕후(孝顯王后) 김씨. 계비는 홍재룡의 딸 효정왕후 홍씨다.




1830년(순조30) 왕세손에 책봉, 1834년 순조가 승하하자 8세로 경희궁 숭정문에서 최연소로 즉위하니, 대왕대비 순원왕후(순조妃)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순조 때 정권 잡은 안동김씨, 새로 등장한 풍양조씨 두 외척이 세력을 다투다가 한때 풍양 조씨가 집권하였으나, 1846년 조만영이 죽자 정권은 다시 안동 김씨에게 넘어갔다.




1841년 친정(親政)의 길이 열렸으나 세도정치의 여파인 과거제도 및 국가재정의 기본이 되는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국정이 혼란해졌으며, 재위 15년 중 9년에 걸쳐 수재가 발생하여 민생고가 컸었다.


순조 때의 천주교 탄압정책을 이어받아 많은 신자를 학살하였으며(기해박해), 이어 천주교인을 적발하기 위하여 오가작통법 실시하고, 1846년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을 처형하였다.





헌종은 1885년 효현왕후가 운명하자, 계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헌종의 눈에 들어온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인은 순화궁의 경빈 김씨였다.


헌종은 그녀에게 창덕궁에 낙선재와 수강재라는 전각을 지었으며 그녀에게 석북헌이라는 처소를 지어 선물해주었다. 평생토록 헌종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 즉 꼭두각시의 삶을 살아왔지만 경빈과 함께한 2년은 타인의 삶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았다.




낙선재의 뜻은 즐거운 낙(樂), 착할 선(善)이다. 경빈 김씨만을 사랑한 조선 최고 로맨티스트로 헌종이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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