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로 출발한 왕 일컬어 강화도령
스스로 국리민복(國利民福)
펼치지 못한 채로
여자에 파묻혀 살다
서른세 살 떠나다
-정유지-
예릉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길 233-126에 있다.
예릉은 조선 제25대 철종과 그의 비 철인왕후의 쌍릉으로 조선왕릉 상설제도에 따라 마지막으로 조성된 능이다.
철종(1831∼1863, 재위 1849∼1863)은 어렸을 때 이름이 원범이고,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 염씨이다.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이를 비유해 철종을 ‘강화도령’이라 불렀다.
강화도령은 사도세자의 서자였던 은언군의 후손으로 모반 사건에 휘말려 강화도에서 유배생활을 했으며 순조의 양자로 입적하여 헌종에 이어 철종으로 등극했고, 한성의 반가에선 그를 비꼬아서 강화도령이라 불렀다.
당시 24대 왕 헌종이 후사 없이 승하했다. 당시 정치기상도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을 이루고 있었고 왕실 어른으로는 안동김씨의 든든한 버팀목 순조 비 순원왕후와 승하한 임금의 어머니 신정왕후가 있었다.
1844년 철종 형 원경이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고 자신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강화에 들어온 철종의 아버지 전계군은 글을 모르는 것이 목숨 보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원범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농사꾼이 되라 일렀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된 원범은 아는 것이 없어서 즉위 초에는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의욕 한번 펴지 못하고 여자에 파묻혀 살던 철종은 1863년 12월8일 창덕궁 대조전에서 승하했다.
부인 8명에 5남 1녀를 두었으나 모두 단명했다.
농부출신 철종이 권력투쟁 한 번 하지 않고 왕이 된 것 자체가 보통의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33세 나이로 요절했지만 농부출신도 왕이 된 철종처럼 좋은 일이 갑자기 생길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