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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貞陵)

by 정유지

정릉(貞陵)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살아서 행복했던 최초의 국모일세

천수를 누렸다면 두 아들 지키면서

쿠데타 세력 구심점

왕자의 난 없었겠지

-정유지




정릉(貞陵)은 조선 제1대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묘이다.


신덕왕후는 태조 이성계의 부인이자 조선 최초의 국모였다.


이성계는 사랑하는 신덕왕후와 사후에도 함께 묻히기를 원하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왕후의 우측에 자신이 미리 묻힐 자리 마련하여 ‘정릉’이라고 명명하였으나, 그것이 오히려 이방원에게 반감을 주었다.


결국 태조는 건원릉에, 신덕왕후는 정릉에 각각 따로 모셔진 배경이 되었다. 만약 신덕왕후 강씨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지 않고 건재했더라면 권력의 향배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덕왕후 강씨를 중심으로 했던 신진사대부들의 결집 또한 유지됐을 것이고, 감히 살아있는 권력 이성계에게 정면 도전하려던 역심(逆心 : 정치 쿠데타) 역시 발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칼로 흥한 자, 칼을 고집하면, 칼로 망하리라.”란 말처럼 조선을 세우는데 한 축 담당했던 이방원 칼날에 의해 즉, 이방원의 역(逆) 쿠데타가 실현된 것이다. 신덕왕후 그녀는 천수 누리지 못한 채, 태조 5년 8월에 이득분 사저에서 세상을 떠났다.


죽은 권력은 살아 있는 권력을 이길 수 없듯이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태종은 정릉이 도성 안에 있고, 능역이 광대하다하여 아예 정릉을 도성 동북쪽 산기슭 즉, 지금 정릉동에 천장한다.

신덕왕후 강씨를 태조의 후궁으로 폐위시켰다.




260여 년 후 현종 10년, 우암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신덕왕후로 다시 복위되고, 정릉의 능 상설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를 중심으로 어제의 동지였던 개국공신들의 희비가 교차했다.


왕자의 난을 계기로 반이방원 노선을 걷던 이들이 이슬처럼 사라졌다.


원래 권력은 무상하지만, 경국대전을 집필한 정도전의 몰락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큰 사건이었다.


신덕왕후가 천수를 누렸다면 그의 운명도 바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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