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은 제8대 왕 예종의 원비 장순왕후 한 씨의 추존 능으로 파주시 파주삼릉(사적 제205호) 경내에 있다.
당초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 묘로 조성된 관계로 공릉은 봉분에 병풍석, 난간석이 없으며 망주석 또한 생략되었고, 다른 능에 비해 봉분이 크며 석양(石羊)과 석호(石虎)는 좌우 각각 1쌍씩을 배치돼 능 주변을 호위하고 있다.
한 씨는 1470년 1월 22일 장순왕후라는 시호와 공릉이라는 능호를 받았다.
1445년 1월 16일 (세종 27)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셋째 딸로 태어난 한 씨는 명문가의 딸이면서 아름답고 정숙하여 1460년 4월 11일 세조의 둘째 아들 해양대군과 가례를 올리고 세자빈으로 책봉되었는데 1461년 11월 30일 원손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이 도져서 안가의 사저에 피접을 나가 있다가 17세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의 아들인 인성대군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유년 시절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일찍 승하한 장순왕후는 아름답고 정숙하였다고 한다.
만약 산후병이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 있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건강임을 일깨워준 역사의 교훈을 엿볼 수 있다.
한명회가 천하의 재상이라고 하지만 자식의 불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권력도 무상한 게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 아닐까. 그럼에도 조선 왕조 3대에 걸쳐 공신의 지위를 누리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