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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릉(敬陵)

by 정유지

경릉(敬陵)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세자로 살다 죽고 뒤늦게 추존된 왕

스무살 덕종 급사 충격적 요절 이후

한명회 소혜왕후가

성종 임금 만들었지

-정유지



출처:조선왕릉 사진작가 김상일

경릉은 조선 세조 장자로 요절한 의경세자(후에 덕종(1438~1457)으로 추존)와 그의 비 소혜왕후 한씨(昭惠王后 韓氏, 1437~1504)의 능이다. 소혜왕후는 인수대비(仁粹大妃)로 더 알려져 있다. 좌의정을 지낸 한확의 딸이며, 성종의 모후이다.


서오릉의 하나로, 1970년5월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서오릉은 세조 장남 의경세자의 묘가 조성된 후 훗날 경릉으로 추존되었고 그 후 예종의 창릉,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익릉, 숙종의 명릉, 맨 끝으로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홍릉이 조성되자 동구릉 다음으로 왕실가족묘의 형태로 구성되었다.


경릉은 동원이강릉 형식 취하고 있는데, 동원이강릉 형식이란,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왕이 우측, 왕비가 좌측에 모셔지지만 경릉에서는 좌측에 왕릉, 우측에 왕비릉이 있다.




덕종의 능은 후일 추존된 왕이기 때문에 무덤을 만들 때 능처럼 꾸미지 않았고, 이에 반해 왕비는 생전에 덕종이 추존되면서 왕비로 책봉됨에 따라 능도 왕비릉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젊은 나이 요절한 지아비의 명예와 자신의 장래를 위해서는 둘째 아들(자을산군)에게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작심한 한씨는, 왕족 체면 버리고 칠삭등이 한명회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자을산군을 한명회 딸과 결혼) 맺었으며 권력창출의 달인 한명회를 지렛대 삼아 자을산군을 조선 제 9대왕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궁중의 큰 어른으로 폐비윤씨 축출에 깊이 간여한 한씨는 손자인 연산군에게 머리 받혀 사경을 헤매다. 1504년 창정궁 경춘전에서 작고한다.




소혜왕후는 비운의 여자로 살지 않고 오히려 자식을 왕으로 만든 철의 여인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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