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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릉(章陵)

by 정유지

장릉(章陵)


출처:조선왕릉사진작가 김상일

재위를 하지 않은 원종과 인헌왕후

셋째인 능창군이 강화도 자결했네

능양군 인조 왕 되자

원통의 한 풀렸나

-정유지



장릉은 사적 202호로, 경기도 김포 있는 조선 제16대 인조 아버지로 추존된 원종(元宗)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쌍릉이다.


이 자리는 본래 인조 모친 계운궁 연주부부인 구씨(인헌왕후)가 사망하자 그의 묘소인 육경원(毓慶園)으로 조성된 곳이었다.


육경원은 조선시대 인조의 생모인 인헌왕후 구씨의 묘이다. 경기도 김포시 김포면 풍무리 있는 장릉의 이전 명칭이고, 인조 10년(1632) 정원군이 원종(元宗)으로 추존됨에 따라 인헌왕후로 추존되고, 능호도 정원군의 묘인 흥경원과 함께 장릉으로 바뀌었다.




장릉은 역대 왕의 능이 아니라 추존왕릉이다. 원종은 1580년(선조 13) 6월 22일 경복궁 별전에서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1590년(선조 23) 11세에 가례를 올렸다.


어릴 때부터 용모가 남다르고 태도가 신중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남달랐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피난길에 올라 험난한 시기를 겪고 1595년(선조 28) 겨울에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1608년에는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로부터 7년 후 원종 셋째 아들 능창군을 황해도 수안 군수 신경희가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무고로 인하여 커다란 옥사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능창군은 강화도로 유배당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원종의 집안은 풍비박산 난다.


그 후 원종은 몸져 누워 1619년(광해군 11) 12월 29일 4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3년 뒤 큰 아들 능양군(인조)이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른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누구나 인격을 존중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 습관은 긍정의 프레임을 만드는 비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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