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의 창

을숙도 갈대숲

by 정유지

을숙도 갈대숲

볕 한 폭 내려앉아 수묵을 치는 걸까

사색을 불러 모아 윤슬을 빚는 시간

낙동강 휘어 감고서

철새마저 부른다


설렘을 사려 담아 수줍은 듯 늘 서서

바람길 나는 대로 낭만을 풀어놓고

운무를 활짝 펼치며

남해 한 점 찍는다

-정유지



오늘의 창은 '을숙도 갈대숲'입니다.


바람과 생명의 교차점 을숙도는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물과 바람, 새와 사람이 공존하는 생명의 섬입니다.


시조 속의 갈대숲은 그 생명의 중심에서, 묵묵히 흐름과 순환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볕 한 폭 내려앉아 수묵을 치는 걸까”라는 구절에서 보이듯, 을숙도는 자연의 화폭 위에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내는 화가입니다. 그 붓끝에는 인간의 손길보다 더 섬세한 시간의 붓질과 바람의 호흡이 담겨 있습니다.


“낙동강 휘어 감고서 철새마저 부른다”는 표현은 을숙도가 단순한 지리적 장소가 아닌, 이주와 귀환의 기억을 품은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철새는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지만, 갈대숲은 그 자리에 서서 모든 생명의 드나듦을 품는 어머니의 품이 됩니다.


“나는 흔들려야 존재를 증명한다.” 갈대숲은 그렇게 속삭입니다. 세찬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흐르는 물결에도 뿌리를 놓지 않는 것은, 유연함 속의 강인함을 아는 까닭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멈추지 말고, 흘러가라. 그러나 잊지 말라, 머물던 바람의 온도를.”


그 속에는 자연의 인내와 인간의 삶이 닮은 결이 있습니다. 늘 흔들리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갈대처럼, 을숙도의 풍경은 우리에게 ‘흔들림의 미학’, 그리고‘존재의 겸허함’을 일깨워줍니다.




을숙도는 자연의 정적과 생명의 동적 리듬이 공존하는 시적 공간입니다. 그곳의 갈대숲은 인간에게 묻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바람에 흔들릴 용기는 있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길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