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에 있던 태양이 슬며시 아래로 내려온다.
저먼 바다의 끝에 걸려 점점 깊어지려고 한다.
마치 애태우는 사랑처럼 그 사람처럼 태양의 주황빛이 온 하늘을 물들인다.
검은 바위 끝에 걸터앉아 내려가는 태양을 응시한다.
머리 위에 있을 땐 볼 수도 없던 거대한 빛이 어째서 같은 눈높이가 되어서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비릿한 바닷바람에 생각들은 날아갔고 눈앞의 태양이 이제는 노을이라는 이름으로 변해갔다.
몸속 안에서 깊은숨이 올라왔다.
가슴 부분이 부풀면서 언제부터 쌓여있었는지 모를 피곤이나 짜증이나
삼켜야만 했던 분노들이 덜어져 가고 있었다.
깊게도 자리 잡은 그런 몹쓸 감정들이 맞바람으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삼켜져 버렸다.
그제야 마음의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 더 들어가 보니
각진 구석사이마다 기쁨들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팔을 뻗어 그 표면을 닦아내 보았다.
마치 짠기가 얼굴에 붙어 땀과 섞이면서 오래된 기계부품을 만지는 것 같은
검은 기름때처럼 손가락 끝에 묻어났다.
찜찜한 기분에 옷에 닦아보려고 하지만 사라질 리 없었고
바닥에 널려있는 모래한 줌을 가득 집어 양손으로 비볐다.
마른 흙냄새가 풍겨왔다.
가벼운 것은 허공으로 날아갔고 무거운 돌조각들은 아래로 떨어져 집어 올려진 빈 공간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코로 들어오는 모래의 냄새는 구석진 곰팡이와 같은 텁텁하며 매운 그런 향기가 풍겨왔다.
보이지 않는 작은 알갱이들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모래먼지 거나 곰팡이거나 하는 그런 것이 이제는 지워보려고 해도 안되고 닦아보려고 해도 안된다.
시원한 바람에 이끌려 노을이나 보려고 했던 과거의 나는
이런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