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가장 먼저 인간을 밀어냈다. 그리고 사물을 밀어냈다. 이후 음식을 밀어냈다. 우두커니 숨을 쉬고 있다. 속이 텅 빈 깡통이 떠오른다.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누구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도 침범하지 않도록 영역을 구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나드는 존재는 있다. 주로 짐승 아니면 인간이다. 특정 인간은 철저하게 고립된 본인을 귀찮게 한다. 그러한 존재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나는 그 목적을 인지하고 있다. 상대방은 그러한 목적을 더욱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갈 길을 가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언어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쓸모가 없는 정에 의해서 흉기를 들어야만 하는 것 같다. 과감히 끊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내 삶과 전혀 상관이 없는 길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러한 특정 인간을 떠나고자 한다. 떠나보내고자 한다. 떠나고 싶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떠날 수 없다. 벗어날 수 없다. 일종의 늪. 오, 난 잃었다. 방황의 끝에 있는 것은 저열한 쾌락이었다. 일종의 중독. 쉽게 벗어나기 힘든 저열한 사유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이렇게 글을 작성하는 중. 죽는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내일도 살아있는 인간처럼 오늘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내 곁의 인간들의 죽음은 나에게 어떠한 가치를 알려주었을까? 내 곁의 인간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은 언어도단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특정한 존재가 매우 귀찮게 느껴지는 것도 현실이다.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알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 대해서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에게 정보를 캐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어떠한 특정 인간과도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저 귀찮게 할 바에는 네 길을 가라는 뜻에 불과하다. 당신이 내밀었던 호의의 손을 뿌리치고 싶지는 않았다. 본색을 드러내는 모습에 나는 뿌리칠 수 밖에 없었다. 추악한 모습을 가면으로 숨길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저급함은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당신은 가장 어리석은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