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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by 고대현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그렇지는 않겠으나 - 교만해지기 시작하면 하늘을 겨냥해서 삿대질을 한다. 즉 가소롭게 여기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러한 언행은 이른 시일 내에 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어두운 밤에 언뜻 하늘을 바라봤다. 분명히 흐린 편이 아니라고 인식을 했다. 대문 밖으로 신체를 꺼냈다. 대문을 열면 계단이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인간을 즉각 마주할 수 있으나 위를 택하고 행했다. 이후 호젓한 골목에 진입했다. 어떤 인간도 마주하지 않았다. 어두웠다. 금수는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차갑게 느껴졌다. 외롭지는 않았다. 괴롭기는 했던 것 같다. 계속 걸었다. 앞으로 걸었다. 앞만 보고 걸었다. 때로는 땅을 보고 걸었다. 좌우를 살피기도 했다. 시끄럽지 않았다. 꽤 적막하게 느껴졌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끊임없이 위치하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걸었다. 이전보다 인파가 많은 곳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아뿔싸! 서서히 쏟아지기 시작하는 소나기 - 나는 우산이 없었고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맞을 수 밖에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세지고 있었다. 나는 어느 사물 아래에 신체를 옮길 수 밖에는 없었다. 여전히 퍼붓고 있었다. 광풍은 멈추지 않았다. 날씨는 추웠다. 의자에 앉아서 회고하고 있었다. 또 다시 현실로 시선을 돌렸을 때 여전히 추웠다. 신체가 꽤 젖은 상태였다. 축축했다. 우울하거나 외롭지는 않았다. 괴롭기는 했던 것 같다.

어떤 계기에 의해서 번민하던 감정이 잠시 전환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았다. 비는 세차게 내렸지만 그러한 순간은 본인과 무관하게 느껴졌다. 옷이 젖어서 광풍이 나를 스쳐서 지나가도 그러한 순간은 무관하게 느껴졌다. 비교적 최근에 인연이 닿았던 사람의 긍정적인 표현이 나의 부정성을 상쇄시켰던 것 같았다. 순간 나는 기뻤다. 내가 행하는 행위에 확신이 없었는데 마치 확신을 가져다준 사람이라고 나는 의미를 부여했다.

오! 좋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우산도 없이 걸었다. 그저 걸었다. 복귀하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생겼다. 걷는 도중에 배후에서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도 내가 물에 젖은 생쥐처럼 보여서 웃는 것이었을까? 나는 결코 그들이 웃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배후에 시선을 던지지 않고 걸었다. 또 걸었다. 추호도 지체하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기뻤다. 기분이 좋았다. 시원했다. 더 이상은 차갑지 않았다. 좋았다. 그저 좋았다. 행복했다. 순간 행복을 느꼈다. 소중한 사람! 연결되었다는 느낌! 분리되지 않은 사람! 가치가 있는 사람! 고마운 사람!

흠뻑 젖은 상태로 누옥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골방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어떤 인간도 나의 고통을 모르고 어떤 인간의 고통에 관하여 나는 무심하다.

복귀 이후 어느정도 숨을 고른 뒤 나는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고 늘 그렇듯 골방에서 책과 사전을 펼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사그라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으며 책을 탐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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