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있는 인간이다. 어머니가 본다. 쉽게 알아라치지 못하는데 있어서 언행 따위로 표현을 하는 순간 그제서야 힘겹게 알아보는 것 같다. 친동생이 본다. 별다른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 절단 그리고 단절을 겪은 우리는 아직도 너무나 어색하다. 아버지가 본다. 당신 많이 늙었다. 죽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무덤을 파기 위해서 삽을 들고 싶지만 어디에 묻어야 하는지 아직은 모르겠다. 삽을 들고 아버지라는 작자의 머리를 후려쳐야만 하는 것일까? 심정 같아서는 그의 심장을 도려내고 싶지만 나에게는 그럴만큼 용기가 부족하다. 나에게 심장을 선사하고 나에게 심장을 앗아간 아버지라는 인간에게 나는 심장을 빼앗아 올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을 그대로 두고 있다. 어쩌면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우리이기에-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분명하게 얼굴이 있는 인간이다. 나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인간들은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의 얼굴을 바라볼 가치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서로 갈 길을 가는 것 뿐이다. 전혀 상관이 없는 인간들이 뒤섞여서 구역질을 드리우는 것은 익숙하지만 도망을 칠 수 없는 현실이기에- 그래서 역겹고 그래서 외롭고 그래서 괴롭다.
익숙한 얼굴이 있는 인간이다. 가족이라는 존재 다음으로 수치적인 시간 상 오래 경험한 인간이 눈 앞에 있다. 알아볼 수 있을까? 일말의 기대감 속에서 실망을 가득 안고 돌아선다. 친구라는 존재는 이런 존재다. 자세하게 알 수 없었다. 현재는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예전보다는 그렇다. 그렇구나- 너희들도 그저 그런 인간이었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