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시점으로부터 반 년 전으로 기억을 한다. 그 때 나의 신체는 가벼웠고 심정은 무거웠으나 나의 지갑은 더욱 더 가벼운 상태였다. 주변에는 인간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그들과 상대적으로 어울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들은 나에게 대부분 친절하게 대했으나 나는 그들을 냉랭하게 대한 것이 전부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그들은 나에게 가혹함을 선사하기도 했으며 나는 평소와 다르게 그들에게 애정을 느끼기도 했었지만 나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내가 먼저 냉철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도 나에게 그러한 철퇴를 내려친다는 상대적인 인과론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이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는 작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당시에는 즐겼다. 그 때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 넘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교적 어린 친구들은 적었으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꽤 있었고 나는 그들과 쉽사리 친구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형식적으로 어울리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들이라고 지칭하는 존재란,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20대 그리고 30대 남녀를 통틀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이 본문에서 쓰이는 언어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했다.
초장에 언급했으나 지갑은 언제나 가벼운 상태였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자본주의에 필요한 것은 절대적으로 금전이었다. 금전이 있으면 특정 사람의 목소리가 커지고 어깨는 더욱 더 상승하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반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금전이 없다면? 지갑이 매우 가볍다면? 사람 취급도 받기 어렵다. 강아지가 짖는다고 내가 짖으리라는 법은 없는데 돈이 없으면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 어떠한 인간이 나를 강아지 산책을 시키듯이 끌고 나가면 나는 그저 목줄이 채워져 끌려 나가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의 의지는 전혀 상관이 없고 타인의 의지에 의해서 내가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사유든 행위든 무관하게 말이다. 그래서 비참하다. 그러한 일종의 비굴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금전이 급진적으로 필요했다. 벗어나려고 시도를 하는 특정 인간은 아름다울 수 있으나 쉽사리 벗어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아니한 인간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더 헤매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즉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작자들은 나를 쉽게 유린했다.
또래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곳은 인적이 비교적 드문 번화가였다. 그리고 어느 지하 술집, 그 곳에는 어두운 분위기가 만연했고 좌석은 얼마 존재하지도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감각이 예민하지 않은 인간이라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넓게 오픈이 된 공간에 등받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의자들이 둥글하게 그리고 납작하면서 거무튀튀하게 생겨먹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곳에서 주로 모였고 이 곳의 실질적인 주인장으로 보이는 덩치가 어느정도 있는 앞머리는 없고 호탕하게 생겼으며 안경을 쓰지 않았고 대뜸 반말로 실실 웃으면서 접근하는 수완을 보니까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을 걸면 피곤하고 대화를 하면 더욱 더 피곤하며 내가 실질적으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잃는다는 것이 많을 것 같은 인간과의 대화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한 인간 또한 나 같이 생겨먹은 인간에게는 절대 대화를 먼저 거는 법이 없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대화를 할 수 없는 유형들이고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며 서로 마주를 할 필요가 없는 존재들인데 사람들과 더불어서 있다가 보니까 나도 어설프게 그러한 유형의 사람을 대면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점에서 불안했고 불행했으며 나의 지갑은 여전히 가벼워서 더욱 더 불안하고 더욱 더 불행했다고 할 수 있다.